'핏플랍 샌들' 대박나자 판권 갈등
해외 제품을 수입판매하는 임정빈 넥솔브 대표는 2008년 일본 도쿄를 여행하다 한 편집매장에서 ‘핏플랍’(사진)이란 샌들을 발견했다. 깔끔하고 개성있는 디자인이 눈에 띄었다. 임 대표는 영국 본사와 협의해 2009년 판매를 시작했다.

‘영국 왕실서 온 샌들’ ‘신고 걸으면 날씬해진다’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마케팅을 펼쳤다. 지난 6년간 핏플랍 브랜드에만 110억원 이상 투자했다. 영국 브랜드 핏플랍은 국내 여성에게 샌들의 대명사가 됐다. 10만원대의 높은 가격에도 불티나듯 팔린다. ‘핏플랍 st(스타일)’를 앞세우는 짝퉁도 시장에 넘쳐난다. 지난해 매출은 2009년 대비 19배 이상 뛴 270억원대에 이르렀다.

넥솔브는 핏플랍과 함께 컸다. 핏플랍 매출이 전체의 87%를 차지한다. 백화점 매장만 52개로 늘렸다. 최근 대형 물류창고도 지었다.

하지만 넥솔브는 내년부터 핏플랍을 판매할 수 없게 됐다. 넥솔브는 얼마 전 핏플랍 본사로부터 “넥솔브와의 독점판매계약을 해지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핏플랍은 한국의 공식 판매자를 LF(옛 LG패션)로 변경하기로 했다.

임 대표는 “피땀 흘려 자식처럼 키운 브랜드를 잃게 됐다”고 말했다. 넥솔브는 LF를 상대로 ‘독점판매권 등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핏플랍 측에도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핏플랍의 최고경영자(CEO)가 LF 측에 2년간 수입 물량을 넥솔브에 독점공급하는 안을 제안해보겠다고 했지만 진전된 것은 없다”고 전했다.

LF 측은 이에 대해 “넥솔브와 핏플랍의 판매계약이 작년 말 끝났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답을 듣고 4월28일 계약을 맺었다”고 설명했다. 또 핏플랍 측이 한국에서의 판매를 확대하기 위해 해외브랜드 제품 수입판매에서 많은 성과를 올린 LF를 선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핏플랍이 먼저 LF에 판매를 제안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넥솔브 측은 “LF가 중소기업이 키워놓은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먼저 핏플랍 측에 제안한 것 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넥솔브가 제대로 계약을 챙기지 못해 발생한 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넥솔브와 핏플랍의 공식 독점판매계약은 2013년 12월까지였다. 작년과 올해는 계약서 없이 구두로 기간을 연장했다는 게 넥솔브 측의 설명이다. 임 대표는 “2013년 재계약 논의를 시작했지만 핏플랍이 계약서 작성을 미뤘다”고 설명했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계약을 문서화하고, 계약파기 패널티와 계약을 해지할 경우 1년 전에 미리 고지토록 하는 등 ‘의무조항’에 신경 썼어야 했다”며 “해외 브랜드 제품을 들여다 파는 중소업체는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동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