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약회사 일라이릴리가 23일 알츠하이머 치료제 임상 결과를 공개했다. ‘솔라네주맙’으로 명명된 신약이 뇌세포를 파괴해 치매에 이르게 하는 알츠하이머의 진행 속도를 3분의 1가량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라이릴리가 개발에 성공하면 세계 최초의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현재 4400만명에 이르는 치매환자 치료에 기여할 전망이다.

솔라네주맙은 글로벌 제약업계에서 출시 준비 중인 많은 신약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신약 출시가 봇물을 이룬다”며 “글로벌 제약업계가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알츠하이머·암 신약 쏟아져…글로벌 바이오업계 '신 르네상스'
심부전·콜레스테롤 치료제 출시 앞둬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9일 심부전 치료제 엔트레스토의 출시를 승인했다.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가 개발한 이 약은 심부전으로 인한 사망률과 입원율을 기존 베타차단제와 이뇨제를 쓸 때보다 20%가량 줄여준다. 심부전은 심장 기능 저하로 충분한 혈액을 온몸에 공급해주지 못하는 병이다. 피로감과 숨가쁨이 느껴질 뿐 겉으로 확실하게 표가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치료해도 환자의 10%가 사망에 이를 만큼 가벼운 병은 아니다. 말기에는 심장이식만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나쁜 콜레스테롤’인 저밀도(LDL) 콜레스테롤 치료제는 두 회사에서 각각 신약 출시를 앞두고 있다. 1994년 개발된 스타틴이 듣지 않는 사람들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지난 21일 유럽위원회(EC)로부터 출시 허가를 받은 미국 암젠의 레파타는 나쁜 콜레스테롤을 약 55% 감소시킨다. 션 하퍼 암젠 연구개발담당 부회장은 “유럽인의 60%는 기존 스타틴 계열의 약으로 콜레스테롤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사노피가 미국 바이오기업 리네제론과 같이 개발한 콜레스테롤 치료제 푸랄루엔트도 조만간 FDA 승인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밖에 미국 화이자는 유방암 치료제인 이브란스를,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말라리아 백신을 개발, 출시를 앞두고 있다. 신약 출시 경쟁은 지난해 절정을 이뤘다. 지난해 출시된 신약은 모두 61개로, 최근 10년간 평균인 34개를 훌쩍 뛰어넘었다.

15년 전 시작된 바이오기술 빛 발해

글로벌 제약업계는 한동안 신약을 내놓지 못했다. 신약 개발 프로젝트는 계속 실패했고, 특허 만료로 복제의약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위기감은 커졌다. 제약업계가 신약을 다시 내놓을 수 있게 된 것은 ‘바이오 기술’ 덕분이다.

조 지메네즈 노바티스 최고경영자(CEO)는 “새로운 기술 덕분에 전에는 시도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약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5년 전 ‘바이오 열풍’은 거품으로 끝났지만 그때 시도됐던 유전자 분석, 세포·단백질 치료제 개발 등이 지금 빛을 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20세기 의약이 작은 화학 분자를 합성해 신물질을 만드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크고 구조가 복잡한 단백질을 합성해 치료제를 만드는 바이오의 시대”라고 진단했다. 암젠의 콜레스테롤 치료제인 레파타를 비롯해 최근 개발되는 신약은 대부분 단백질 치료제다. 화학의약품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유전자 맞춤형 치료가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관건은 가격이다. 지금 특허가 만료된 스타틴 계열의 콜레스테롤 치료제는 한 달에 4달러에 복용할 수 있다. 하지만 레파타나 프랄루엔트 같은 신약은 연간 1만달러(약 1160만원)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길리어드가 2013년 출시한 C형 간염 치료제 소발디는 한 알에 1000달러에 달한다. 12주 동안 복용하면 90% 완치율을 보이지만 12주 약값만 8만4000달러(약 9700만원)다. 미국과 유럽에선 시민단체 등이 제약사를 상대로 약값을 인하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