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기관투자가 서비스)가 3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 의견을 냈다. 삼성물산의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어서 합병을 추진하는 삼성으로서는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삼성과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오는 17일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치열한 세 대결을 벌이고 있다.
[달아오른 삼성-엘리엇 세대결] ISS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반대"…외국인 주주 '권고' 따를까
○ISS “합병 비율 부적절”

ISS는 이날 “비록 한국 법률에 완벽하게 부합한다고 하더라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현 합병 비율 1 대 0.35(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는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며 합병 반대 권고를 냈다. 이어 “1 대 0.95가 두 회사 합병의 최소 적정 비율이며 합병을 통한 시너지 창출과 매출 전망도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덧붙였다.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게 산정됐다고 주장하는 엘리엇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ISS는 또 “다른 주주들이 이(합병 비율) 문제를 우려할 수 있음에도 삼성물산 이사회는 합병 성공을 위해 제일모직의 2대 주주에게 자사주를 매각했다”며 삼성물산이 자사주 5.76%를 우호세력인 KCC에 매각한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삼성물산은 이에 대해 “ISS 보고서가 경영 환경이나 합병의 당위성과 기대효과, 해외 헤지펀드의 근본적인 의도 등 중요한 사안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점에 대해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성명을 냈다. 또 “정당하고 적법하게 합병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지난 1일 엘리엇이 제기한 가처분 소송의 법원 결정에서도 확인된 내용”이라며 “이번 합병이 기업과 주주에게 모두 이로우며 무엇보다 궁극적으로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 관계자는 “ISS가 제시한 1 대 0.95라는 합병 비율은 자산가치를 주로 고려해 산출한 것”이라며 “국내 자본시장법에서는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 비율을 정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비율로 합병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 ISS 권고 따를까

ISS가 합병 반대 권고를 내면서 삼성은 적잖은 부담을 안게 됐다. 외국계 기관투자가들은 주총 안건에 대해 ISS 권고에 따라 투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2일 세계 2위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도 이번 합병에 반대 의견을 냈다. 외국인은 엘리엇(7.12%)을 제외하고도 26%가량의 지분을 들고 있다. 이들이 대거 반대표를 던지면 합병이 불발될 수도 있다.

다만 ISS 권고는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인 만큼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이 주총에서 어떻게 투표할지 단정짓기는 어렵다. ISS의 반대 권고에도 합병이 승인된 경우는 적지 않다. 지난해 8월 피아트와 크라이슬러 합병이 대표적이다. 당시 ISS는 피아트 주주들에게 합병 반대를 권고했지만 주총 참석 주주의 80%가량은 합병안에 찬성 표를 던졌다. 국내에서도 지난 3월 CJ의 이사 재선임 당시 ISS는 사내이사들의 감시·견제 의무 불이행을 문제 삼았지만 재선임 안건은 통과됐다.

하지만 삼성으로선 안심할 수 없게 됐다. 삼성이 지금까지 확실하게 ‘내 편’으로 확보한 우호 지분은 19.78%다. 삼성 측 대주주가 보유한 13.82%와 삼성 우호세력으로 나선 KCC 보유 지분 5.96%를 합친 규모다. 이는 합병 결의를 위한 정족수에 한참 못 미친다. 합병은 주총 특별 안건이다. 주총 참석 의결권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국민연금 결정이 변수

투자자들의 관심은 이제 국민연금으로 쏠리고 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21%를 갖고 있다. 단일주주로는 최대다. 이번 합병의 핵심 키를 쥐고 있다. 국민연금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ISS에 의결권 자문 서비스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합병 비율뿐 아니라 합병 기업의 기업가치, 주주정책, 시너지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찬반 의견을 정할 방침이다.

삼성물산이 최근 KCC에 넘긴 자사주 5.76%의 의결권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도 변수다. 법원은 지난 1일 엘리엇이 낸 ‘주총 소집 및 주총에서 합병 결의 금지’ 가처분 신청에선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자사주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선 결정을 미뤘다. 법조계에선 자사주 의결권도 삼성에 유리한 판결이 내려질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지만 결과를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