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출범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57개 AIIB 창립회원국 대표들은 2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모여 AIIB 운영의 기본 원칙을 담은 협정문에 서명했다. 러우지웨이(樓繼偉) 중국 재정부 장관은 서명식 축사에서 “AIIB의 ‘기본법’과 같은 협정문에 서명한 것은 이정표적인 의미를 지닌다”며 “AIIB가 호혜공영, 공동발전, 다자협력 등의 원칙 아래 연내 공식 운영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협정문에 따르면 AIIB의 투자 결정에 대한 모든 권한은 이사회가 보유한다. 세이프가드(안전장치) 조항 역시 협정문에 반영됐다. 중국이 처음으로 자국 주도로 설립하는 국제기구인 AIIB의 성공을 위해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이 제기해온 비판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배구조 우려 상당 부분 해소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AIIB 협정문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AIIB 협정문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재부가 이날 공개한 AIIB 협정문의 주요 내용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지배구조 관련 부분이다. 협정문은 AIIB의 투자 결정에 대한 모든 권한은 이사회가 보유하도록 했다. 원래 중국은 총재 산하에 ‘투자위원회’라는 집행기구를 별도로 만들어 투자에 관한 의사결정을 맡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AIIB가 중국의 입김에 좌우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한 발 물러섰다. 최 부총리는 “총재가 임명하는 집행기구가 아닌 회원국 대표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주요 의사결정 권한을 갖게 된 것은 상당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처음에는 이사회가 비상임기구로 출발하지만 총회 의결이 있으면 향후 상임기구로 전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협정문은 또 업무 원칙과 관련해 ‘건전한 은행업의 원칙에 따라 자금을 제공한다’고 명시했다. AIIB의 자금이 환경·노동·인권 등의 측면에서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국가들에 제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세이프가드를 둬야 한다는 서구 국가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협정문은 중국의 거부권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중국은 그러나 26.06%의 투표권을 보유해 전체 투표권의 75%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주요 의사결정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거부권을 갖게 됐다. 비회원국 지원과 자본금 변경, 이사회 규모·구성 변경, 협정문 개정 등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차이나데일리는 “향후 일본 등 경제 규모가 큰 나라들이 추가로 가입하면 중국의 거부권이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AIIB 회원국들은 △조달정책 등 20여개 세부 운영원칙 △총재·부총재 등 경영진 선출 △이사회 구성 등에 대한 추가 협상을 진행한 뒤 연말께 AIIB를 공식 출범시킬 계획이다.

○미·일, TPP·ADB로 ‘맞불’ 작전

중국이 주도하는 AIIB 출범이 임박하자 미국과 일본은 다급해졌다. 양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을 통해 ‘맞불’을 놓는다는 전략이다.

미국 의회는 지난 24일 TPP 협상 타결의 전제조건으로 여겨지는 무역협상촉진권한(TPA)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TPP 협상은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일본이 AIIB에 가입할 가능성은 당분간 희박하다는 전망이 많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최근까지도 AIIB 가입에 대해 “지배구조와 운영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 한 참여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향후 마음을 바꿔 참여를 희망한다 해도 증자에 필요한 시간이 있어 내년 이후에나 가입이 가능할 것으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대신 일본은 ADB를 통한 아시아 역내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ADB가 지난 5월 총회에서 현재 연간 130억달러 수준인 대출 한도를 2017년까지 최대 200억달러로 1.5배 이상 확대하기로 한 것도 일본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베이징=김동윤/도쿄=서정환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