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조장혁 변호사 "수천억 소송보다 맹수 연구할 때 가슴이 두근거리죠"

맹수류 연구 권위자 조장혁 율촌 변호사

동물도감 끼고 산 어린시절
서울대 법대 마지막 학기 생물학과 수업으로 채워

학위 없는 '동물학 박사'
대형 포유동물 복원 등 참여…"섬에도 호랑이 존재" 밝혀내

한반도에 맹수 복원 꿈
지리산·러시아 등 다니며 수집한 자료만 수천만원대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의 호랑이 우리 앞에 선 조장혁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그는 “남한 생태계는 맹수의 멸종으로 이상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한반도에 맹수를 복원하는 게 해법”이라고 말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합리주의 철학자 스피노자가 렌즈를 깎아 생계를 유지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스피노자는 낮에 일하고 밤에 글을 썼고 교수직도 거절하는 등 직업 철학자와는 먼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의 철학은 사상사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이처럼 밥벌이가 아닌 일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조장혁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44·사법연수원 31기)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율촌 부동산건설그룹 소속으로 수천억원이 걸린 소송을 처리한다. 이와 별개로 환경부가 그에게 자문할 정도로 야생동물, 특히 맹수류 연구에서 학계에서도 알아주는 실력파다. 돈을 버는 일이 직업이고 돈을 쓰는 일이 취미라면 그에게 동물학 공부는 전적으로 취미다.

조 변호사는 “맹수에 대해 공부할 때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이 분야에 애정이 깊다”며 “숲에 현장 탐사를 나가 동물의 흔적을 발견할 때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야생동물 연구를 직업으로 했으면 재미가 없었을 것 같다. 일이 되는 순간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며 “전적으로 취미생활이기 때문에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여기서 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 변호사는 1주일에 10~15시간은 야생동물을 공부한다. 지금까지 모은 야생동물 관련 자료를 돈으로 따지면 수천만원에 이른다. 호랑이와 표범 보호 활동을 하는 사단법인 한국범보존기금 이사도 맡고 있다.

법대에서 생물학과로 전과 생각도

흔히 ‘좋아하는 일을 밥벌이로 삼는 게 행복’이라고 여기듯 조 변호사도 어렸을 때는 야생동물 연구를 직업으로 삼고 싶어했다. 생태계에 대한 그의 관심은 소싯적부터 남달랐다. 동물과 곤충을 자주 관찰했고 친구가 빌려준 동물도감을 밤을 새우며 보기도 했다. TV를 틀면 항상 ‘동물의 왕국’만 봤다. 서울 화곡동 단독주택에 살며 마당에서 동물을 직접 길렀다.

그러나 조 변호사가 대학을 간 1990년까지만 해도 대학에 야생동물을 공부할 수 있는 과가 없었다. 결국 부모의 권유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학교에 다니며 생물학과로 전과하려는 생각도 했고 환경부에 들어가기 위해 행정고시도 기웃거렸다. 그러나 다시 부모의 권유로 사법시험을 봐서 합격하는 좌절(?)을 겪었다. 2002년 사법연수원 수료 뒤 판사로 일하다가 2008년 법복을 벗고 율촌에 들어갔다.

직업이 야생동물과 관계없다고 해서 삶에서 야생동물이 지워진 건 아니었다. 인터넷에 종종 야생동물 관련 글을 올려 생태학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대학 4학년 때 환경운동연합 대학생회에 들어갔고 학내 환경동아리 씨알을 만들었다. 대학 마지막 학기 학점은 생물학과 수업으로 모두 채웠다. 사법연수원 1년차이던 1999년 녹색연합 간사와 함께 ‘야생동물 소모임(야소모)’을 만들어 초대 회장을 지냈다. 지금 국공립 생태연구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 상당수는 조 변호사의 ‘야소모’ 후배다. 이 무렵 생태주의 시민단체인 녹색연합에도 가입해 활동했다. 지리산 등 야생동물이 사는 현장에 수시로 다녔다. 호랑이의 흔적을 찾아 러시아에도 두 번 다녀왔다.

생태학 학위 없지만 학계에서도 유명

이런 생활을 하다보니 어느새 학계에서 유명인이 돼 있었다. 생태학 관련 학위도 하나 없는데 여기저기서 자문하며 조 변호사를 찾았다. 환경부는 지난 4월 야생동물 관련 전문가 모임인 ‘대형 포유동물 복원을 위한 전문가 포럼’을 만들며 조 변호사에게 참여를 요청했다. 지난달에는 서울대에서 전문 연구자를 대상으로 발표도 했다. 이항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가 지난해 ‘호랑이 복원 타당성 검토 보고서’를 쓸 때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조 변호사는 “직업 동물학자가 아니다보니 오히려 학계 사람들과 두루두루 사이가 좋다”며 “포럼 참여나 조언을 많이 하는 건 이런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학계에서 널리 인정받는 연구 성과도 냈다. 3년 전 조 변호사는 100년 전 출판된 책을 뒤지는 등 끈질기게 문헌을 추적한 끝에 진도에서 호랑이가 잡힌 적이 있다는 걸 증명했다. 과거 한반도에서 내륙이 아닌 섬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건 국내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었다. 범보존기금 이름으로 보도자료를 냈고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이항 교수와 표범 유전자 연구를 하고 있다. 러시아에 살았던 표범 종과 한반도에 살았던 종이 유전학적으로 같은 종인지를 확인하는 연구다. 지금까지 러시아와 한반도의 종이 같을 것이라는 추정은 많았지만 명백히 증명된 적은 없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면 한반도 표범을 복원하는 데 러시아 표범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야생성에 대한 동경이 연구 계기

대도시에서 야생동물 친화적인 삶을 살다보니 크고 작은 에피소드도 있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인 2001년 야소모 사람들을 불러 집들이를 했다. 회원 중 한 명이 러시아 답사에서 가지고 온 동물 배설물을 집들이 자리에 들고 왔다. 이 회원은 사향노루 호랑이 산양 사슴 등 다양한 동물의 배설물을 한 덩이, 두 덩이 떼서 다른 회원들에게 선물로 줬다.

조 변호사의 아내는 그 모습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조 변호사는 “동물 배설물을 선물이라고 주는 것도 이상한데 사람들이 그걸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아내가 많이 혼란스러워 했다”며 “이런 일 때문에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금은 야생동물 공부를 인정하고 격려해준다”고 말했다.

인간은 절대 자연을 이길 수 없다

조 변호사가 이처럼 맹수 연구를 꾸준히 하게 된 이유는 뭘까. 그는 “야생성에 대한 동경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서울에서 살아 자연환경을 가까이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런 환경이 야생성에 대한 동경을 더 강화했다는 게 조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위험을 동반한 야생성을 추구하는 게 인간의 고유한 본성 중 하나”라며 “사람들이 여행을 가거나 놀이공원 사파리를 찾는 것도 그런 본성 때문인데 나는 그걸 더 적극적으로 좇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변호사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호랑이다. 생태계 최고 포식자라는 위엄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췄기 때문이라고. 그는 “특히 한반도에 살았던 종에 애착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며 “한반도에 대형 맹수를 되살려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게 나의 가장 큰 과제”라고 했다.

오랫동안 야생동물을 연구하면서 깨달은 것도 있다. ‘인간은 절대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 사회는 아무리 노력해도 생태계가 돌아가는 것만큼 냉혹하고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개개의 동물 종에 비해 인간이 우월한 건 맞지만 생태계 전체를 놓고 보면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자연과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다른 동물 종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며 “시골에서 감을 수확할 때 까치밥을 하나 남겨놓는 ‘까치밥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맹수 사라진 한반도
고라니·멧돼지 등 늘어 농작물 등 매년 피해 심각
호랑이·표범 복원 기금 조성

현재 남한에는 고양잇과 맹수가 살지 않는다. 사진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포획시기는 호랑이가 1920년, 표범이 1970년이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서식지 감소와 포획이 이들의 멸종을 불렀다. 북한의 사정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조장혁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호랑이는 북한에서도 멸종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표범만 소수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남한 생태계는 맹수의 멸종으로 이상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들의 멸종을 초래한 사람도 피해를 입고 있다. 고라니와 멧돼지 개체수가 늘어나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게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포획을 통해 이들 종의 개체수를 줄이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이 대형 포식자의 역할을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다.

아직 희망은 있다. 이들 한반도 맹수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러시아의 아무르 호랑이가 한반도에 살았던 것과 유전학적으로 같은 종이다. 러시아에 서식하는 아무르 표범은 조 변호사와 이항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가 연구 중인데 한반도의 과거 종과 유전학적으로 같을 확률이 높다. 아무르라는 이름은 러시아의 아무르강(흑룡강)에서 유래했다.

한국범보존기금은 아무르 호랑이와 표범을 한반도에서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녹색연합에서 2004년 야생동물을 위한 만원계(회원들이 1만원씩 모아 공동의 목적을 위해 쓰는 모임)를 만든 게 기금의 시초다. 호랑이와 표범 만원계가 2012년 한국범보존기금으로 새출발을 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러시아 민간 환경단체인 피닉스기금에 보낸 돈만 5000만원 가까이 된다. 러시아의 아무르 종이 건강해야 장래 한반도에도 희망이 있다는 생각에서다. 통일이 되면 북한의 맹수 보존을 위해 쓰려고 900만원 정도를 쌓아놨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호랑이그림그리기대회도 열고 있다.

조 변호사는 “맹수의 멸종으로 얻은 안락한 생활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며 “한반도에 이들을 복원해 상생하는 게 해법”이라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