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자사주 취득밖에 없습니다.”

삼성물산은 지난 10일 ‘백기사’ KCC에 자사주 5.76% 전량을 매각하면서 낸 보도자료에서 이같이 밝혔다. 국내에서 현행 법령상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적고,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기업이 실행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경영권 방어 곳곳 '지뢰밭'] "황금주·포이즌필 도입하고 영국처럼 지분공시 기준도 강화해야"
○재계 경영권 방어 비상

엘리엇매니지먼트 등 해외 헤지펀드를 필두로 한 적대적 M&A 세력이 삼성뿐만 아니라 국내 주요 기업을 공격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제계는 “경영권 방어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내 기업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어 수단은 자사주 취득과 신주의 제3자 배정, 초다수결의제, 황금낙하산 정도다. 하지만 자사주 취득 외에 다른 수단은 사실상 무력화돼 있다.

신주를 발행해 경영진에 우호적인 투자자에게 넘기는 제3자 배정은 다른 주주가 법적 문제를 제기하면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 이재혁 한국상장사협의회 정책연구실 과장은 “법원은 신주를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만 특정 제3자에게 배정하는 것을 무효로 판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기존 경영진을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해임할 때 상법상 특별결의 요건(출석 주주 3분의 2, 총주주 3분의 1 이상 찬성)보다 강화된 요건을 거치도록 한 초다수결의제도 위법 논란이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2008년 한 상장사가 도입한 초다수결의제에 대해 “상법상 근거가 없다”며 무효 판결을 내린 가운데 아직 대법원은 관련 판결을 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일부 상장사는 위법 가능성을 무릅쓰고 이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기존 경영진이 적대적 M&A를 당해 물러날 때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거액 위로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황금낙하산 제도는 사회적 논란으로 도입하기가 어려운 여건이다. 신석훈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은 “5억원 이상 연봉을 받는 임원들의 보수가 공개돼 지탄받는 사회 분위기에서 기업들이 황금낙하산을 도입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723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가운데 황금낙하산 제도를 도입한 기업은 21개에 불과했다.

○“지분 매입 공시요건 강화해야”

경제계는 위법 논란이 있는 경영권 방어책을 다른 선진국처럼 법에 명문화하고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을 새로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차등의결권은 최대주주 등에게 보유 지분율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지난해 9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가 중국이나 홍콩이 아닌 미국 증시에 상장한 이유는 미국에서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등의결권의 극단적인 형태로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 운용하는 ‘황금주’ 제도도 있다. 기존 경영진이 적대적 M&A를 당할 때 주총에서 지분율과 상관없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어책이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M&A 움직임이 있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다. 2010년 한 차례 국내 도입이 검토됐으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무산됐다.

기존 경영진에 적대적 M&A 시도를 미리 간파할 수 있도록 한 ‘주식 5% 보고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석훈 팀장은 “한국은 일반 주주가 상장사의 5% 이상 지분을 매입하면 공시토록 하고 있지만 영국은 3% 이상이면 공시해야 한다”며 “보고 요건을 강화하는 것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 황금주

보유한 주식의 수량이나 비율과 관계없이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있을 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주식.

■ 포이즌필

적대적 M&A 시도로 경영권이 위협받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회사 신주를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

■ 초다수결의제

기존 경영진을 해임할 때 필요한 주주총회 결의 요건을 법에서 정한 기준(출석 주주 3분의 2, 총주주 3분의 1 이상 찬성)보다 강화한 제도.

임도원/남윤선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