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상환수수료 없이 7일 내 대출 철회 가능
올 하반기부터 금융회사와 맺은 모든 가계대출이나 할부금융 계약은 7일 이내에 해지하면 중도상환수수료를 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금융회사가 부담한 등기수수료, 인지세 등의 비용은 소비자가 부담해야 한다.

한국금융연구원은 29일 서울 명동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이 같은 내용의 ‘대출성 상품 청약철회권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연구원이 제시한 방안이 향후 정부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윤곽 드러낸 청약철회권

대출청약철회권은 소비자가 금융회사에서 대출받은 뒤 계약을 해지하더라도 중도상환수수료를 물리지 않는 제도다. 부적절한 대출로 피해를 보는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게 이 제도의 취지다. 금융위원회는 올 하반기께부터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대출청약철회권을 도입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금융연구원이 내놓은 방안에 따르면 청약철회권 적용 대상에는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등 모든 가계대출과 자동차 등 모든 할부금융이 포함됐다. 여신금융사들이 취급하는 리스는 제외된다.

청약철회에 따른 금융회사와 소비자 간 비용 부담에 대한 기준도 나왔다. 청약을 철회하는 소비자는 금융회사에서 받은 대출금과 철회기간까지의 이자를 내야 한다. 중도상환수수료를 부담하지 않지만 은행이 부담하는 등록면허세, 지방교육세, 등기신청수수료, 인지세 등은 내야 한다. 다만 대출모집인과 관련한 수수료는 금융회사가 부담하도록 했다.

청약철회는 계약서 발급일 혹은 실제 대출일 가운데 빠른 날짜를 기준으로 ‘7일 이내’에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청약철회 표시는 서면통보를 비롯해 전화, 이메일 등을 통해서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철회권 행사 자격은 개인으로 한정했다.

◆금융회사들은 부작용 우려

금융연구원은 해외 주요국이 대출청약철회권을 도입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유럽연합(EU)은 대출상품별로 7~14일 이내의 청약철회기간을 주고 있고, 미국도 주택대출에 대해 3영업일 이내 철회할 수 있는 권리를 소비자에게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청약철회권을 행사하면 원금과 일정 이자를 은행에 되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청약철회를 반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은행들의 생각은 다르다. 대출청약철회권을 악용하는 블랙컨슈머가 잇따라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액을 대출받아 며칠 쓰고 나서 곧바로 계약을 철회하거나 은행 대출이 급전대출 형태의 이자놀음을 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은행들이 청약철회권 도입으로 중도상환수수료를 못 받는 데 따른 손실을 대출금리에 전가할 수 있고, 대출계약을 맺고 나서 철회기간(7일)이 지난 뒤 실제 대출해주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란 이유에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용대출만 하더라도 서류 작성 등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데, 청약철회권을 도입하면 은행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태명/김일규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