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졸업식 축사
대학 졸업식의 백미는 축사(祝辭)다. 캠퍼스의 ‘마지막 수업’이어서 그럴까. 입학식 축사는 까먹어도 졸업식 축사는 오랫동안 잊지 못한다. 유명 인사들의 경험이 담긴 명연설은 학생들의 인생 나침반이다. 일반인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래서 해마다 졸업시즌이면 세계 언론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다.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 죽음을 앞둔 암투병 환자가 “아직도 배고프다”며 바보처럼 꿈을 향해 나아가라고 한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엊그제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가 시카고시립대 졸업식에서 한 축사도 “야망을 가져라. 끝없이 손 내밀어 꿈꿔라”였다. 이는 딱 두 마디뿐이었던 윈스턴 처칠의 옥스퍼드대 축사와 맞닿는다. “포기하지 말라!”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대부분의 명사는 이처럼 꿈과 도전의식을 강조한다. 졸업 후 맞닥뜨릴 현실이 그만큼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도 얼마 전 조지워싱턴대 졸업식에서 “인생의 북극성을 찾고, 불의와 싸우라”고 말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조앤 K 롤링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누구나 실패할 수 있지만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실패”라며 용기를 내라고 조언했다. 빌 게이츠나 에릭 슈밋 등은 인류 미래나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단순비교하긴 좀 껄끄럽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친애하는 내외빈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구식 멘트가 많다. 깊은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사자성어를 나열하는 자기과시형 축사도 흔하다. 그럴 바에는 솔직한 자기고백이나 파격적인 직설법이 낫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주 “나처럼 C학점을 받고 졸업하는 이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는 축사로 박수를 받았다.

엊그제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드니로의 뉴욕대 예술대 축사는 과격하면서도 유머러스했다. “여러분은 해냈습니다. 그리고 엿 됐습니다(Graduates, you made it. And, you’re fucked).” 아카데미상을 두 번이나 받았으나 숱한 ‘거절 인생’을 겪었던 그가 “당신들 앞에는 이제 ‘거절당하는 문’이라는 현실이 있으니 오디션에서 많이 떨어지더라도 항상 ‘다음에(next)!’를 외치면서 힘을 내라”고 조언한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이를 ‘올해 최고의 축사’로 꼽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