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 투자 열풍' 주의보…합병심사 철회 잇따라
스팩(SPAC·기업인수목적 회사)과 합병을 통해 상장을 시도했던 기업들이 한국거래소 심사 과정에서 합병을 자진 철회하거나 승인받지 못하는 일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일반 기업뿐만 아니라 스팩 합병 회사도 지정감사를 받도록 한 규정을 피해 지난 3월 무리하게 합병을 진행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25일 거래소에 따르면 LIG스팩2호와 합병을 결의했던 엔지스테크널러지는 합병 상장 예비심사 과정에서 내부 사정으로 예비심사를 자진 철회하기로 지난 22일 결정했다. 지난 19일엔 대우스팩2호와 합병하기로 했던 선바이오도 매출과 당기순이익 규모가 작아 상장 승인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 심사를 철회했다. 선바이오는 기술평가 특례를 밟아 상장을 재추진할 계획이지만 상장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23일엔 판도라티비(하나머스트3호스팩과 합병)와 프로스테믹스(KB제2호스팩)가 거래소 심사 과정에서 승인을 받지 못한 채 속개 판정을 받았다. 속개 판정이란 심사 과정에서 발견된 미비점이 해결되면 상장을 승인해주겠다는 일종의 ‘보류’ 판정이다.

스팩은 서류상의 회사를 증시에 상장한 뒤 일반 주식처럼 거래하다가 적당한 기업을 찾아 인수합병하는 제도다. 직접 상장보다 절차가 간소하고 기간도 짧아 올 들어 20개 스팩이 거래소 입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거래소가 지난달 1일부터 스팩 합병 기업도 지정감사(증권선물위원회가 정한 외부감사인에게 상장 전 회계감사를 받는 제도)를 받도록 규정을 고치면서 혼란이 야기됐다. 일부 증권사들이 상장 자격에 미달되는 기업들도 합병 대상에 넣으면서 지난 3월에만 8개 기업에 대해 한꺼번에 합병 결의 신청을 한 것. 3월 합병 신청 건수는 지난해 전체 스팩 합병 기업(7개)보다 많았다.

거래소는 스팩 합병도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잣대로 심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스팩과 합병했다고 해서 승인을 쉽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며 “기업의 계속성, 안정성, 투명성 등 질적 심사를 원칙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IB업계는 스팩 합병기업을 일반기업 상장과 같은 잣대로 평가하면 스팩 본래의 취지가 퇴색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도 최소 10억원의 출자금이 1년 동안 묶이는데 허술한 기업을 올리지는 않는다”며 “주주들이 주주총회에서 합병이 적절한지 판단하는 과정이 남아있는데 거래소가 심사에 너무 세밀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말했다.

김우섭/서기열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