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저 절로 가는 사람', 바쁜 일상 속 나를 돌아보는 여유
산속에 자리 잡은 사찰은 불교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찾고 싶은 마음이 들 만한 곳이다. 승(僧)과 속(俗)을 가르는 경계이자 구도의 길로 들어서는 관문이라는 곳에 호기심을 가질 법하다. 《저 절로 가는 사람》은 소설가 강석경(사진)이 찾은 절과 그 안에서 맺은 인연을 담담하게 그린 산문집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편히 들어가 둘러볼 수 있는 곳이지만 막상 절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스님들이 어떤 화두를 품고 있는지 진지한 대화를 나눠보기도 쉽지 않다. 저자는 독자 대신 절에 들어가 절과 스님들이 가진 제각각의 사연을 아름다운 문체로 그린다.

저자는 자신만의 때가 되면 ‘내 마음의 절’에 들어간다. 아만(我慢·자만하고 남을 업신여김)을 무너뜨리고 공덕의 숲을 키운다는 화엄산림법회가 열리는 통도사에서 송년 의식을 치른다. “일체 만물이 지혜의 바다에 비친 그림자인데 중생은 미혹해서 그림자만 알고 마음인 물을 몰라. 우리 마음의 물에 비친 그림자는 아무리 큰 것도 작은 것도 그림자일 뿐 자체가 없어요.” (종문 큰스님 법문 중)

[책마을] '저 절로 가는 사람', 바쁜 일상 속 나를 돌아보는 여유
동지 팥죽을 먹으러 간 조계산 송광사에서는 장엄한 예불 의식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송광사 살림을 맡은 인석 스님의 모습을 보면 절이 그저 고요하기만 한 곳이 아니라 수많은 수행자가 모인 삶의 현장이란 것을 알 수 있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해인사 장경판전에선 춘분과 추분 오후 3시께 통로에 그려지는 연꽃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저자는 “1년에 두 번 연꽃을 피우는 장경판전이야말로 불교의 세계관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성안 스님은 팔만대장경 보존국장으로 대장경 연구와 보존에 노력했던 분이다. 누구보다 대장경을 아끼고 사랑했던 성안 스님은 지난해 불의의 사고로 세상과의 인연을 마쳐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경쟁 사회에서 누군가는 뒤처지고 고통받는다는 게 안타까워 출가한 해인사 혜인 행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온전히 깨닫기 위해 끝없는 공부의 길을 걷고 있는 화운사 주지 선일 스님, 17년 동안 수백개 사찰에 있는 불화 3156점을 사진으로 기록한 송천 스님의 이야기는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뒤를 돌아볼 여유를 줄 법하다.

박정남 교보문고 구매팀 과장은 “상처와 번뇌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 한가운데로 향하는 스님들의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며 “청춘의 마음에 고요한 울림을 만들어낼 만한 문학적이고 종교적인 에세이”라고 말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