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공 SW 분할발주, SW산업 살리는 첫 단추
지금 한국 사회는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일상생활 패턴을 완전히 바꿔 놓았고 무인 자동차, 무인 비행기, 3차원(3D) 프린터, 의료 정보기술(IT)기기, 사물인터넷 등은 더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 변화의 원동력은 소프트웨어(SW)다.

‘SW 혁명’이 한국 사회 곳곳에서 핵분열처럼 일어나고 있다. 효율성을 높이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며, 지식노동까지도 자동화하는 SW 혁명은 우리를 ‘SW 중심사회’로 이끌고 있다. SW 중심사회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SW 해법이 존재해 풍요롭고 투명하며 안전하고 효율적인 사회를 일컫는다.

그러나 준비가 안돼 있으면 SW 중심사회는 커다란 재앙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자동차, 항공기, 원자력발전소 등 사회기간시스템의 SW 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SW 오작동은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심각한 것은 일자리 문제다. 단순 일자리뿐만 아니라 지적 업무까지도 자동화되고 있다. SW 관련 일자리는 증가하지만 이는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 SW가 개인, 기업은 물론 국가 경쟁력의 기초가 됨에 따라 SW산업 육성과 전문인력 양성은 국가의 생존 전략이 됐다.

안타깝게도 한국 SW산업은 영세하고 SW 전문가도 부족하다. SW에 대한 이해 부족과 후진적인 발주제도가 가장 큰 원인이다. SW는 제값을 받지 못하고, 개발자는 전문가로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SW 기업들이 고사(枯死)하고 인재가 기피하는 상황에서는 창조경제와 SW 중심사회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다행히 조달청과 미래창조과학부를 중심으로 해결책을 찾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제도 개혁의 핵심은 공공발주에서 상용SW제품의 구매 확대와 설계공정 분할발주를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설계공정 분할발주란 설계를 먼저 하고, 설계도면에 따라 SW를 구축하는 제도로 선진국에서는 오래전에 정착된 제도다. 우리는 요구사항도 명확히 하지 않고 설계도면도 없이 SW 개발을 시작하며, 수시로 과업을 변경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분할발주 제도는 별도의 SW 설계 사업을 통해 안 보이는 SW 시스템을 보여 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건축에서 모델하우스를 짓는 것과 같은 논리다. 발주자와 개발자가 상호 이해하고 합의할 수 있는 수준까지 구체적 설계를 통해 SW를 가시화하고 계량화해 구현단계 과업의 범위와 가격을 결정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불확실성이 줄어서 높은 품질의 SW를 낮은 가격에 생산할 수 있다. 또 설계 문서가 잘 작성되기 때문에 유지·관리가 쉬운 것도 큰 이점이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 고부가가치를 올리는 설계 전문회사가 나오고, 고급 설계인력이 양성될 것이다.

다가오는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에서의 SW 거래는 서비스 구매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즉 SW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수도와 전기처럼 사용하는 만큼 돈을 내는 개념이다. 값싸고 안정적으로 SW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촉진하기 위한 클라우드 컴퓨팅 발전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했다. SW를 서비스로 거래하기 위해서는 계량화가 전제돼야 한다. SW 설계 공정의 분할발주 방식은 이의 준비이기도 하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SW 발주제도 개혁은 SW산업을 살리는 첫 단추이자 마지막 기회다.

김진형 < 소프트웨어 정책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