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참기름과 들기름
‘참깨 들깨 노는데 아주까리 못 놀까.’ 별 어중이 떠중이들이 다 하는 일에 어엿한 내가 어찌 못 끼겠는가 하는 속담이다. 참깨와 들깨는 생김새가 아주까리보다 훨씬 작지만 식물기름의 제왕이다. 기껏해야 윤활유나 머릿기름으로 쓰이는 아주까리가 덩치만 믿고 까불다 그 맛과 향기에 치여 꽁무니를 빼기 딱 좋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을 위해 굳이 설명하자면 참깨에서 짠 것이 참기름, 들깨에서 짠 것이 들기름(들깨기름)이다. 두 기름 모두 혈관 건강에 이로운 불포화지방으로 구성돼 있다. 참기름에는 불포화지방 중에서도 오메가6 지방의 일종인 리놀레산이 많다. 천연 항산화제인 세사몰, 세사몰린 등이 포함돼 있어 의약품과 화장품의 보습제로도 쓴다.

들기름에는 오메가3 지방의 하나인 리놀렌산이 많이 들어 있다. 리놀렌산은 체내에서 등푸른 생선에 많은 EPA나 DHA로 바뀌어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고지혈증 심장병을 예방한다. 피부를 곱게 하는 기능이 있다고 해서 옛날부터 혼기를 앞둔 딸에게 많이 먹였다고 한다. 요즘 웰빙 식용유로 인기를 모으는 것도 이런 연유다.

보관하는 데에는 참기름이 유리하다. 실온에서 오래 저장할 수 있고 참기름으로 조리한 음식도 잘 변하지 않는다. 기름 속의 항산화 성분이 산화를 막아 주기 때문이다. 반면 들기름은 공기 중에 내놓으면 빠르게 산화해 과산화 지질로 변한다. 그래서 들기름을 발라 구운 김은 빨리 먹는 게 좋다. 들기름 원료인 들깨는 대부분 충청, 호남, 영남 지역에서 주로 나지만 요즘은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들기름의 주성분인 오메가3가 치매예방 등에 효과가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덕분이다.

해외에서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올해 1~4월 들기름 수출액은 268만1000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2만3000달러)보다 약 20배 늘었다. 일본 수출액은 2만7000달러에서 257만1000달러로 100배 가까이 뛰었다. 농식품 전체 수출이 0.6%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규모다. 일본 TV 프로그램이 우리 들기름 성분을 소개한 뒤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한국 들기름은 2008년 처음 일본 수출길에 오른 이후 대형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일본은 들기름 생산기반이 취약해 우리 들기름을 많이 수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툭하면 가짜 참기름 관련 뉴스로 참깨 농가들을 우울하게 했는데, 모처럼 들기름 수출이 활기를 띤다는 소식을 들으니 반갑다. 괜스레 입에 침도 고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