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꼼수로 끝난 공무원연금 개혁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혁신의 주요과제로 공무원연금 개혁을 강조했다. 국민이 하루 60억원씩 부담하는 지금 구조로는 한국의 미래가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없음을 명확히 깨달은 것이다.

초기 개혁안은 기여율(공무원이 급여에서 기여금으로 내는 비율) 10%와 지급률(공무원들이 은퇴 후 받는 연금액을 산정하는 비율) 1.65% 수준이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논의되면서 지급률은 현행 1.9%에서 20년에 걸쳐 1.7%로 내리고, 현재 7%인 기여율은 5년 후에 9%로 올리는 안이 합의됐다.

개혁안이 나온 지금 기대수명은 80세 수준이다. 하지만 100세 시대가 곧 현실화된다. 즉 실제 재정적자 수준은 논의안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뜻이다. 연금을 받을 사람이 더욱 늘어나고, 수령 기간 또한 길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급률에 대한 합의안 시차가 20년이나 되는 걸 보면, 개혁 명분과 기득권 유지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꼼수를 읽을 수 있다.

합의안은 개혁이 아니다. 기여율을 올리고 지급률은 내린다는 기본 방향만 옳았을 뿐이다. 변화 수준을 보면 ‘무늬만 개혁’이다. 이 정도 합의안을 위해 대통령이 개혁을 강조하진 않았을 것이다. 개혁은 합의에 의해서 이뤄지지 않는다. 특히 개혁안이 국회로 넘겨지면, 더 이상 개혁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국회는 절대 개혁할 수 없는 구조다. 정치인들은 정치적 지지를 최고 가치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개혁은 개혁 당사자의 희생을 요구한다. 성공적 개혁을 위해선, 정치 지도자가 개혁 당사자의 희생을 유도해야 한다. 국가 미래를 위해 자발적 희생이 따르면 좋지만, 대부분 개혁은 당사자들의 저항이 따른다. 유능한 지도자는 이런 저항 속에서 국가 미래를 위해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 당사자의 저항을 무력화시켜야 한다. 이런 어려운 진통을 거쳐야 그 나라의 미래가 있다. 그래서 개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정치권과 이해 당사자인 공무원의 합의에 의해 유도하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잘못됐다. 개혁을 위해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들을 수 있지만, 개혁 방향은 국민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공무원의 희망사항이 개혁에 반영돼선 안 된다.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의 처리과정을 보면 개혁은 애초 불가능했다. 대통령이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의지를 보였을 땐, 개혁 과정에 대한 진통과 처리 절차에 대한 준비가 돼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제 공무원연금 개혁은 물 건너간 듯하다. 외형적으론 개혁이란 포장을 했고, 6년 만의 개정이란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사실 공무원 연금보다 더 개혁이 필요한 영역은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2060년이면 기금 완전 고갈이 예상될 정도로 잠재적 적자 문제가 심각하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막바지에 합의한 내용을 보면, 공무원연금 합의안으로 줄어든 재정의 20%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데 사용한다고 한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필요한 것은 이보다 훨씬 문제가 심각한 국민연금을 개혁하기 위함에 있다.

그런데 공무원연금을 정치권에 맡겼더니 국민연금 재정구조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공무원연금의 당사자는 100만여명이지만, 국민연금은 약 2000만명이다. 국민에게 개혁을 위한 희생을 요구해야 할 시점에 정치권은 국가 미래를 망치는 타협을 한 셈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공적 연금 개혁의 시발점이다. 첫 개혁부터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면, 앞으로 국민연금 개혁은 불가능하다. 국민에 봉사하는 공무원연금조차도 국민의 이름으로 개혁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국민에게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자발적 희생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현진권 < 자유경제원장 jinkwonhyun@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