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미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중국을 앞섰다는 분석이 나왔다며 중국의 '통계 조작설'을 최근 제기했다.

WSJ은 '놀랍다! 미국이 중국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지 모른다' 제목의 기사에서 BNP 파리바의 리처드 일레이 수석 아시아 이코노미스트 말을 인용, 양국의 1분기 성장률을 달러로 환산한 결과, 중국 명목 GDP가 3.5% 증가에 그친 반면, 미국은 4%에 달했다고 전했다.

중국 당국은 1분기 실질 GDP 증가율이 7.0%였다고 최근에 발표한 바 있다.

일레이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GDP 디플레이터가 의심스럽다"며 '물가지수 조작'으로 설명했다.

GDP 디플레이터를 낮춰 실질 GDP를 높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1분기 철도 운송량과 전기생산, 수입 등 지표와 비교해도 실질 성장률 수치가 부풀려졌을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안기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무역흑자 기여도를 제외하면 중국의 가계와 기업이 느낄 성장률은 7%가 안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7% 성장 발표 후 서방 언론을 중심으로 "통계가 다듬어진 것 같다"는 관측도 나왔었다.

◇ 오해 초래한 1분기 성장률
지난 15일 세계 언론은 마젠탕(馬建堂) 중국 국가통계국장 발언을 주목했다.

1분기 GDP가 작년 동기보다 7.0% 성장했다는 발표는 작년 11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뉴 노멀(New normal·新常態) 선언'을 연상시켰다.

시 주석은 베이징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회의 개막 연설에서 "7% 성장에 그친다 해도 세계적으로 보면 최상위권 성적이다"라고 강조했는데 이 수치가 5개월이 흐른 뒤에도 정확히 일치했다.

전문가들이 수 일 전부터 "시 주석의 말에 맞춰 의도적으로 경기를 조정할 것"이라는 예언도 맞아 떨어졌다.

중국 당국은 통계조작(tampering)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근거 없는 억측", "중국에 대한 편견" 등으로 일축해왔다.

자본시장정책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발표 수 일 전부터 "각종 지표들을 종합해보면 1분기 성장이 6.8%로 추정되나 그대로 공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9일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한 2009년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비공개회의 발언록은 연준(Fed) 이사들의 중국 통계에 대한 불신감을 보여준다.

리처드 피셔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중국은 분기가 끝나기도 전에 수치를 알고 있는 등 수치작업의 민첩성에 늘 놀란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4분기 성장률이 발표 수치인 6.1% 이하임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들을 나열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2013.7.15)도 2년 전 투자전문업체 시킹알파의 분석을 인용, "중국의 2분기 성장률(7.5%)은 올해 가장 큰 거짓말(the biggest fib)"이라며 실제는 6%대에 불과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그 해 5월과 6월 연속 수출이 둔화됐고, 2분기 내내 제조업이 위축되는 등 경기 둔화 신호가 여기저기에서 감지됐다는 것이다.

러우지웨이(樓繼偉) 재정부장의 발언 해프닝도 조작 논란을 가열시켰다.

그는 신화통신(2013.7.12)을 통해 "7%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가 '경착륙 가능성' 보도가 나오자 "7.5% 목표 달성 이상무"라고 번복했다.

◇"불투명 행정 등으로 불신 자초" 지적도
"중국통계 어디까지 믿나?" 2013년 11월 한 인터넷 블로거는 2011년 저장성 원저우에 연쇄도산 사태로 실업자가 늘어났는데도 실업률 통계가 10년째 4%라며 이렇게 반문했다.

FT는 2013년 8월 국가통계국의 PMI(구매자관리지수)가 50 이상으로 경기확장 신호를 보낸 반면, HSBC 발표치는 50 이하로 경기축소 신호가 나오는 등 5월부터 3개월 연속 엇갈렸다며 PMI 조작설을 제기했다.

중국학자들은 이를 지수 산출 근거인 조사 대상의 차이로 설명했다.

국가통계국과 물류·구매협회(CFLP)가 산출한 PMI 조사대상은 3천여 대형·국유기업이고, HSBC와 영국 마킷그룹이 공동 발표한 PMI는 400여 소형·민간기업 대상의 설문 조사라는 것이다.

홍콩의 중국 전문가 프랭크 칭도 '믿기 어려운 중국의 인공(man-made, unreliable) GDP통계' 제목의 신문 기고문(2014.7.2)에서 지방정부 GDP 총합이 중앙정부 통계와 늘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2013년에는 "1∼3분기의 27개 성·자치구의 GDP 수치를 합해보니 전국 GDP보다 3조 4천억위안(592조 5천억원)이 많다"는 보도도 나왔다.

저장성에서 인터넷 사업을 하는 H씨는 "GDP 집계시 원 데이터 수집이 안되면 추산을 하는데 지역마다 방식이 틀린다"고 말했다.

고위간부들이 승진을 위해 교역·투자유치액을 상부에 과장 보고하는 것도 통계왜곡 배경 중 하나다.

이원화된 통계집계 시스템도 문제다.

중국은 1985년부터 국가 및 지방통계국이 따로 산출하는 등 추계기관이 달라 오차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중국이 성장 수치에 과민 반응을 보인 나머지 '통계 마사지'를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기업이나 정부는 중국이 발표하는 데이터의 큰 줄기를 따라가되, 다양한 실물경기의 보조지표를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통계 신뢰성 문제는 행정 투명성의 결여 때문일 수 있다.

중국은 2011년 11월부터 통계 데이터 수집 과정을 대대적으로 전산화하는 등 개선 노력을 해왔지만 여전히 성장속도에 못 미치는 통계시스템과 집계방식의 문제점을 중국 언론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2015년을 '법치 원년'으로 선포한 중국정부는 우선 통계 신뢰 회복 작업에 진력해야 할 것이다.

시 주석도 "데이터 품질을 확보하고 통계의 엄격·진실성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과감한 개혁과 인적 청산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와 기대를 받아온 시 주석 정부가 이를 무기로 투명한 선진행정을 구현하기를 국제사회는 기대하고 있다.

식품과 함께 대표적인 '차이나 디스카운트'로 꼽혀 온 통계수치가 더 이상 조롱거리가 되지 않도록 외상 치료(斬草)가 아닌 근치(除根)를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duckhw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