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펀드·ELS 방문판매' 허용해야 하나
왜 ‘보험 아줌마’는 흔한데 ‘펀드 아줌마’는 없을까. 현행 방문판매법에 답이 있다. 가가호호 고객의 집과 사무실을 방문해 금융투자 상품을 파는 것은 대다수 증권사들의 오랜 민원이다. 하지만 “상품 판매 후 14일까지는 계약을 철회할 수 있다”고 돼 있는 법 조항이 증권사의 방문판매 진출을 가로막았다. 고객이 평가손실이 난 금융상품을 들고 와 ‘변심’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요청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게 증권사들의 설명이다.

2013년부터 금융투자업계의 방문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수차례 있었지만 아직 관련 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올 들어서는 “규제를 풀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지난 2월 취임한 황영기 한국금융투자협회장도 업계 숙원사업 중 하나로 방문판매법 개정을 꼽았다. 보험과 증권사 상품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에만 특혜를 줄 필요가 있냐는 지적이다.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 방문판매를 허용하면 지금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불완전판매(금융회사가 고객에게 투자 위험 등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상품을 파는 것)가 훨씬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찬성 / "펀드 '칸막이 규제'는 형평성 위배…소비자 선택 넓혀야 품질도 개선"

국민경제적 저축수단…판매채널 넓혀야


[맞짱 토론] '펀드·ELS 방문판매' 허용해야 하나
금융회사 직원이 직접 고객을 방문해 펀드, 채권, 주가연계증권(ELS), 파생결합증권(DLS) 등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이하 방문판매법)’ 개정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2013년 4월 국회에 법안이 발의된 이후 찬성과 반대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자리 잡고 있다. 무책임한 방문판매 사원에게 현혹돼 피해를 입는 금융소비자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판매 방식이 가져올 편익이 부작용보다 더 크다고 판단된다. 현재 은행, 증권, 보험은 권역별로 금융상품의 판매 방식이 다르다. 보험상품은 대부분 방문 혹은 전화 권유를 통해 판매가 이뤄진다. 이에 비해 은행의 예적금, 증권사·자산운용사의 파생결합상품, 펀드 등은 이런 방식으로 판매할 수 없다. 보험만큼이나 안정적인 금융투자상품이 많은데도 불이익을 받는 구조다. 정부가 자의적으로 만든 칸막이 규제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규제 개혁을 추구하는 현 정부에서 이런 칸막이 장애물을 남겨두는 것은 옳지 않다. 어느 규제에나 장단점이 있지만 한국의 금융 규제는 좀 과하다 싶다. 금융회사들의 손발을 뒤로 꺾은 후 온몸을 동아줄로 칭칭 동여매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나친 규제는 금융투자산업 경쟁력을 좀먹어 결국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판매망을 규제해야 한다는 발상도 사실 어불성설이다. 생산자가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어 소비자의 편익이 저해되는 시장이라면 규제가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처럼 업체 수가 많고 경쟁이 치열한 곳은 자유로운 방식으로 상품을 팔도록 규제를 풀어주는 게 마땅하다.

금융상품이든 일반상품이든 판매망은 중요하다. 어디서 파느냐, 누가 파느냐에 따라 최종 소비자가 지급하는 가격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판매망의 확대는 소비자 선택권 확대→제품가격 하락→품질 향상으로 이어진다. 금융투자상품도 마찬가지다. 불필요한 매장을 줄이고 방문판매를 통해 영업을 하게 되면 금융업체의 고정비가 줄어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혁신적인 상품도 더 많아질 것이다. 보험 등 다른 권역 상품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낼 수밖에 없다. 보다 새로운 금융상품 개발과 판매를 놓고 보험사와 증권사·자산운용사가 건전한 경쟁을 벌이는 효과도 기대해볼 만하다. 이 역시 소비자 후생을 증진시키는 일이다.
[맞짱 토론] '펀드·ELS 방문판매' 허용해야 하나
대표적인 금융투자상품인 펀드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판매 채널을 늘려왔다. 은행에서도 증권사에서도 펀드를 살 수 있다. 오프라인 온라인 구분도 희미하다. 최근엔 펀드 슈퍼마켓이 생겨 타사 제품과 비교해 보며 낮은 수수료의 상품을 고르는 것까지 가능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방문판매를 반대하는 측에서 주장하는 불완전판매 이슈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실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가 직접 펀드를 판매하는 경우가 아니면 어떤 채널에서도 불완전판매가 일어날 수 있다. 지금까지 펀드업계는 투자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여러 채널에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를 기울여왔다. 문제가 전혀 없다고 보긴 힘들지만 보험에 비해 불완전판매나 부당한 지급 거절 논란이 많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펀드가 은행의 예적금과 함께 국민들의 저축 수단으로서 대단히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펀드가 보험상품에 비해 정책적 보호를 덜 받을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반대 / "상품 가입시 '경솔한 선택' 우려…금융소비자 보호 법적 장치 필요"

청약철회권 박탈은 소비자에 위험 전가

[맞짱 토론] '펀드·ELS 방문판매' 허용해야 하나
국회에 계류 중인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이하 방문판매법)’ 개정안은 금융소비자 보호와 전면 배치된다.

우선 개정안이 발의된 취지부터가 그렇다. 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했는데, 투자자가 손실이 발생했다며 청약을 철회하면 손실분을 금융회사가 떠안아야 하는 ‘불합리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기존 법에 명시된 ‘청약철회 규정’의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금융회사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청약철회를 할 수 없게 만든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금융소비자에게 전가된다.

기존 방문판매법에서 소비자가 일정한 기간 내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어도 청약을 철회할 수 있게 한 이유는 소비자의 경솔한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특별히 위험한 상품이 아니어도 그렇고, 위험한 상품이라면 더욱 중요한 소비자의 권리다.

특히 증권사가 방문판매를 통해 팔려는 금융투자상품은 도박의 성질이 강한 위험한 상품이다. 승패가 우연에 따라 결정된다. 예컨대 어느 회사의 주식 가격이 내일 오를지 떨어질지는 여러 사정을 종합해 예측한다고 해도 상당 부분은 우연에 달려 있다. 금리나 환율, 날씨 변화 등을 기준으로 이익과 손실이 결정되는 파생상품은 더욱 그렇다. 금융투자상품을 경제활동의 일부로서 허용하더라도 엄격한 규제가 따라야 하는 이유다. 그 규제의 핵심은 금융투자상품을 소비하는 금융소비자 보호에 있다. 대개 돈을 버는 쪽은 도박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박판을 벌이는 도박장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데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금융사고는 한 번 터지면 피해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의 생계까지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최대한 두텁게 할 필요가 있다. 키코(KIKO)라는 파생금융상품에 가입했던 중소기업들이 허다하게 쓰러진 일, 옛 동양증권이 고객들에게 특정금전신탁방식으로 계열사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팔아 큰 손실을 끼친 사건을 벌써 잊은 것인지 모르겠다.

증권사 방문판매 규제가 완화되면 금융투자상품에 큰 관심이 없거나, 관심은 있어도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지금보다 더 쉽게 유인할 수 있게 된다. 가뜩이나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한 게 금융투자상품인데 소비자의 청약 철회권마저 박탈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청약 철회권을 배제하면 소비자에게 경솔한 선택을 하게 한 금융회사의 책임은 쏙 빠지고 그 위험을 고스란히 소비자가 져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맞짱 토론] '펀드·ELS 방문판매' 허용해야 하나
방문판매법 개정안은 제안 이유에서 보험회사와 체결한 보험계약은 청약철회 규정 적용이 제외된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보험상품은 소비자가 손실을 볼 수 있는 투자상품이 아니다. 소비자의 생명·신체·재산상의 위험을 금전적으로 방어하려고 가입하는 위험회피상품이다. 이런 면에서 청약철회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나름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더구나 지난해 개정된 보험업법에서는 소비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보험계약에서 소비자의 청약철회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금융소비자들이 금융투자상품의 손실 가능성과 범위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방문판매 등의 경우에는 경솔한 금융투자상품 가입을 방지하거나 되돌릴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안전 장치를 도로 걷어가겠다는 방문판매법 개정안은 금융소비자 보호에 역행할 뿐이다.

송형석/허란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