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있는 여자들의 싸움에 안방이 '들썩들썩'
일흔이 넘은 아버지가 문지방을 넘어 햇살 가득한 안마당으로 걸어 들어온다. 마당 안쪽에 나란히 서 있는 장독대와 사랑초 화분이 햇볕을 받고 있다.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딱 좋을 듯한 평상도 한쪽에 있다. 30여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기억은 잃었지만, 그래도 이 마당이 낯설지 않다.

사연있는 여자들의 싸움에 안방이 '들썩들썩'
지난 2일 방영된 KBS 2TV 수목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한 장면이다. 드라마는 죽은 줄 알고 해마다 제사까지 꼬박꼬박 지내온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제 막 두 번째 이야기에 돌입한 느낌이다.

이 드라마는 시청률 격전지라 불리는 수목 드라마 경쟁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아버지의 귀가’ 이후를 그린 12부(지난 2일)의 시청률은 15%(닐슨코리아, 수도권 기준)를 넘어섰다. 정해룡 KBS 책임프로듀서(CP)는 “시청률을 견인할 극적 요소가 다양해 앞으로 시청률도 문제없다”고 말한다. 드라마에서 아버지와 ‘세컨드’인 모란(장미희), 아내 순옥(김혜자)의 위태로운 동거가 시작된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고, 과거는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한다. 현숙(채시라)은 외동딸의 연인이 원수 같은 말년(서이숙)의 소생임을 알게 된다. 현숙의 딸인 마리(이하나)와 말년의 아들인 루오(송재림)는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판이다.

‘마루 커플’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비운의 커플의 앞날을 궁금해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루오의 엄마가 말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마리는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과 다른 당찬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엄마를 배신할 수도 없고, 말년에게 무릎 꿇을 수도 없지만, 루오를 좋아하기에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정면승부를 펼칩니다.”(정 CP)

이 드라마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여배우의 품격을 상징하는 김혜자와 장미희가 그려내는 본처와 ‘세컨드’의 대결, ‘중년의 캔디’로 재탄생한 채시라, ‘대세남’ 송재림 등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드라마가 흥미를 일으킨 요인은 극 속 여자들이 정말 특이하다는 점이다. 돌아온 아버지(이순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읊조린 대사처럼 ‘희한한 여자들 천지’다. 남편을 빼앗아간 ‘세컨드’를 굳이 옆에다 데려다 놓고 은근히 괴롭히는 본처 순옥, 학창시절 수업을 빼먹고 팝스타를 쫓아다녔던 현숙, 공부 잘하는 제자들만 챙기고 엇나가는 학생들은 ‘싹을 잘라 버리는’ 표독스런 교사 말년. 이따금 드러나는 숨길 수 없는 악의에 이젠 웃는 얼굴마저 섬뜩하게 느껴지는 강 선생의 수제자 등.

여성 연기자 위주로 구성된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웃지 못할 일도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모란과 순옥, 현숙과 말년 등 팽팽한 대립관계를 연기할 때면 치열한 연기 대결이 펼쳐져 긴장감이 흐릅니다. 간혹 예쁜 앞치마를 먼저 차지하기 위한 ‘귀여운’ 신경전도 있습니다. 간혹 발차기와 머리 때리기 등 신체 접촉이 있는 장면에선 연기인지 실제인지 모를 상황이 있어 분위기가 냉각될 때도 있죠. 하지만 연기자 선후배들끼리 서로 친하기도 하고 잘 배려해 금방 풀어지곤 합니다.”(정 CP)

드라마 촬영은 경기 이천 한옥집 실내 세트장과 서울 삼청동, 북촌과 서촌 일대에서 이뤄진다. 정 CP는 “그동안 꽤 여유 있게 촬영했는데, 13부 이후로는 이번주에 바로 다음주 분량을 소화해야 하는 스케줄”이라며 “연로한 연기자들의 건강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