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살리는 선봉, 무한한 책임감 느껴"
대장암 수술 권위자 유창식 서울아산병원 암병원장(대장항문외과 과장·사진)이 지난달 20일 제8회 암예방의 날 국민포장을 받았다. 지난 22년간 아산병원에서 일하면서 암 환자 치료와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아산병원에서 최근 만난 그는 매일 수술실에서 암과 사투를 벌이는 외과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끔한 외모와 훤칠한 키를 자랑했다. 유 원장은 “생명을 살려낸다는 원초적인 보람, ‘내가 선봉이다’라는 뿌듯함이 늘 즐겁고 고맙다”며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암 수술에 정평이 나 있는 아산병원 내에서도 대장암 수술 성과는 두드러진다. 병원 측에 따르면 이미 2년 전 국내 최초로 대장암 수술 2만건(직장암 9100건, 우측대장암 4600건, 좌측대장암 6300건)을 달성했고 현재 2만4000건을 돌파했다. 항문을 살리는 문제 때문에 까다로운 직장암 수술의 경우 1기 조기직장암에서 5년 생존율(완치율) 94.1%, 진행성인 2·3기에서 각각 87.8%, 75.4%를 기록했다. 미국 등 선진국보다도 앞서는 실적이다. 유 원장은 효율적인 암 치료를 위해 국내에 진료과 간 통합진료시스템을 도입하고 정착시켰다.

유 원장의 ‘환자 사랑’은 청년 시절 겪은 사고와도 관련이 있다. 서울대 의대 재학시절 부산으로 MT를 갔을 때다.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졸음운전을 해 가로수를 들이받는 사고를 당했다. 의식을 잃고 안면골절 등 중상을 입어 서울로 이송돼 긴급수술을 받았다. 동승한 대학 친구는 척추가 부러졌다. “환자가 돼 보니까 그때야 환자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입원 환자들은 주치의 한번 보고 싶어 하루 종일 절박한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아침 회진 때 30초 보는 게 전부고…. 간호사가 3교대 하면서 많이 고생하는 ‘참 중요한 분들’이라는 걸 그때 비로소 알았어요.” 스키 등 운동을 워낙 좋아해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돼 휠체어를 타고 회진을 돌고, 목발을 짚고 수술실에 들어간 적도 있다.

그의 머릿속에 늘 맴도는 것은 ‘극한의 환자’들이다. 직장암 수술을 받고 호전됐으나 2년 만에 간으로 전이된 환자를 돌봤다. 2년 후 또 폐로 전이가 됐고, 이를 수습하니 임파선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결국 환자는 완치됐고 깊은 고마움을 표하며 병원을 떠났다. “반면 완치 가능성이 큰 2기 진행성 환자를 수술했는데 6개월 만에 간 등으로 전이가 돼 사망한 환자도 있었습니다. 그럴 땐 굉장히 마음이 아프죠. 죄책감도 들고….”

그는 출생 100주년, 타계 14주기를 맞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 대한 고마움도 표했다. “병원 건물 한창 올릴 때 오셔서 현장을 독려하던 ‘왕회장님’ 모습이 선합니다. ‘의사는 가장 고마운 분들’이라며 의료진에 대한 존경을 표했습니다. (아산병원) 의사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풍토를 왕회장님이 만들어 주셨고 그 전통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높은 암 치료 성과와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