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아! 엄마 잘했지” > 크리스티 커가 30일 미국 LPGA투어 KIA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아들 메이슨을 안고 기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아들아! 엄마 잘했지” > 크리스티 커가 30일 미국 LPGA투어 KIA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아들 메이슨을 안고 기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LPGA판 미녀는 괴로워.’

크리스티 커(38·미국)가 우승할 때면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붙었던 수식어다. 작은 키(160㎝)에 80㎏이 넘는 체중, 두꺼운 안경까지 걸쳐 미국 LPGA의 대표적인 ‘뚱녀’로 불리다 혹독한 다이어트로 ‘인생역전’에 성공했다는 이유에서다. 커는 렉시 톰슨(미국), 산드라 갈(독일) 등과 함께 대표적인 LPGA 미녀 골퍼로 꼽힌다. 이제 그에겐 행복한 수식어 하나가 더 붙게 됐다. ‘슈퍼 맘’ 골퍼다. 지난해 아들을 얻은 그는 주부, 엄마, 와인 사업가, 직업 골퍼로 1인 4역을 척척 해낸다.

◆코치 교체 “효과 있었네”

“아들과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승해서 정말 기뻐요.”

30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칼즈배드 아비아라GC(파72·6593야드)에서 끝난 KIA클래식(우승상금 25만5000달러) 최종라운드. 크리스티 커는 이날 7언더파 65타를 몰아쳐 합계 20언더파로 우승컵을 들어올린 뒤 인터뷰가 시작되자 왈칵 눈물을 쏟았다. 지난주 부친을 여읜 캐디(그렉 존스턴)를 위해서라도 꼭 우승하고 싶었다며 울먹이는 커는 영락없는 ‘이웃집 아줌마’였다.

필드 위의 커는 달랐다. 절정의 퍼팅감을 보이며 3라운드까지 단독 선두를 지킨 이미림(25·NH투자증권·사진)의 맹렬한 추격도, 천재 소녀 리디아 고(18·뉴질랜드)의 송곳 아이언샷도 그의 기세를 꺾지 못했다. “연습 시간이 부족해 걱정이 많았다”던 이 슈퍼 맘은 오히려 후반으로 갈수록 집중력이 높아졌다. 마지막 라운드에선 버디를 9개나 쓸어담는 기염을 토했다.

커는 지난주 새로 교체한 스윙코치 효과를 보는 듯했다. 드라이버 티샷은 실수 없이 멀리 나갔고, 아이언 세컨드 샷은 깃대 주변에 착착 붙었다. 백스윙 톱과 다운스윙 때 왼쪽 손목 각도가 안정돼 샷의 방향성이 좋아졌다는 게 전문가(임경빈 더베이직골프 대표)의 평이다.

한국 골퍼 LPGA 7연승 제동 건 '슈퍼맘'
10m 이내의 퍼팅은 거의 다 집어넣었을 만큼 퍼팅감은 발군이었다. 3라운드까지 평균 30개였던 퍼팅 수가 이날 26개로 확 줄었다.

한국(계) 낭자들의 연승 행진은 커의 기세에 눌려 6승에서 멈춰섰다. 리디아 고에겐 16번홀(파4·285야드)이 악몽이었다. 전날 해저드에 공을 빠뜨렸던 리디아 고는 이날도 1m 거리의 버디 퍼트를 놓쳤다. 같은 홀에서 이글을 낚으며 선두 커와 1타 차까지 좁힌 이미림은 17번홀에서 통한의 드라이버 실수 한 번으로 무너졌다. 티샷이 언덕 아래 나무 사이로 빠진 게 더블 보기를 불러온 화근. 세 번째 하이브리드 샷은 러프에 다시 빠졌고, 내리막 경사 그린을 감안해 시도한 로브 샷은 하필 그린 벙커로 들어가며 운까지 따라주지 않았다.

◆리디아 고 28R 연속 언더파

이날 집중 조명을 받은 선수는 커, 이미림과 엎치락뒤치락 난타전을 벌이며 우승 경쟁을 벌인 리디아 고였다. 언더파 행진을 이어갈지가 관심거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리디아는 이날 5언더파로 경기를 마쳐 언더파 기록을 28라운드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다음달 3일 열리는 LPGA투어 메이저대회 ANA인스퍼레이션에서 LPGA 최다 라운드 연속 언더파 기록을 깰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종전 기록은 2004년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 은퇴)이 세운 29라운드다.

한국 골프 팬은 아쉬움을 삼켰지만 LPGA 관계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번 대회마저 한국(계) 선수가 우승할 경우 LPGA 대회가 지나치게 단일 국가 출신 선수에게 편중된다는 비판적 시선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다양한 국가에서 우승자가 나와야 스폰서십이 풍부해진다는 계산도 협회 관계자의 초조함을 하루 종일 증폭시킨 이유 중 하나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