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전(錢)의 흐름' 망가뜨리는 부정부패…증시 또 다른 벽
각국의 부패가 그 나라 경기와 주가를 좌우하는 정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브릭스(BRICS)에 속하더라도 부패 척결을 위해 개혁에 팔을 걷은 중국과 인도의 경제 위상은 높아지는 반면 대통령 등 핵심 권력층이 부패에 휩싸인 러시아와 브라질 경제는 위기가 우려될 정도다. 최근 글로벌 증시에서는 부패가 최대 투자장애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 나라의 뇌물과 부패 정도는 시장경제 원리가 활성화되지 못한 국가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이런 국가에서는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 행정 규제와 정치적 영향력으로 ‘경제적 지대’가 발생한다. 이를 얻어내기 위해 사회 구성원은 치열한 로비 활동을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뇌물과 부패가 만연하는 ‘지대 추구형 사회(rent oriented society)’가 된다.

오랫동안 각국은 뇌물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선진국·개발도상국 가릴 것 없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규모가 커지고 횟수가 더 잦아지는 듯한 분위기다. 방산 비리, 자원 개발 등 국책사업 비리, 국가재정 손실 비리, 사회안전 비리 등 한국도 뇌물과 부패 사건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전(錢)의 흐름' 망가뜨리는 부정부패…증시 또 다른 벽
독일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각국 부패지수(CPI)를 보면 한국은 경제 위상 대비 CPI가 가장 높은 국가다. 작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세계 12위, 수출과 시가총액은 각각 7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20-50클럽(1인당 GDP 2만달러, 인구 5000만명)’에 가입했지만 CPI는 45위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그레이 베커 교수는 뇌물과 부패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각종 규제와 인가, 공무원의 자유 재량권 등을 꼽고 있다. △관료의 질 △공공부문의 임금수준 △정당의 자금조달 등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연일 터지고 있는 뇌물과 부패 사건도 이런 각도에서 보면 쉽게 이해된다.

한 나라의 경제 성장과 증시 발전에 뇌물이나 부패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장경제 기반과 행정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제 발전 초기단계에는 관료에게 급행료를 치르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 이하인 저소득 개도국이 해당한다.

하지만 경제와 증시 발전 단계가 높아질수록 뇌물과 부패는 시장기능을 마비시키고 ‘외부 불경제(사적 비용<사회적 비용)’를 초래하면서 경제 성장과 증시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한국처럼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둔 국가가 뇌물과 부패 고리를 청산하지 못하면 경제 성장이 멈추고 주가가 떨어진다.

부패는 돈의 흐름을 흐트러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다. 특정국의 경제 여건이 좋다 하더라도 돈의 흐름이 명확하지 못하면 외국인은 투자자금을 회수한다. 한국 등 신흥국에서 이 같은 성향이 뚜렷하다. 글로벌 시대에 권력층 부패를 ‘나라 팔아먹는 매국론’으로 정의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도 재계를 중심으로 ‘제대로 된 정책이 제때 나오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앞으로 어떤 대책을 추진하든 간에 의도했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정책 수요층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권력층을 중심으로 부정부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도 ‘좀비 국면’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정책당국은 대외여건이 악화할 때마다 왜 각종 위기설에서 자유롭지 못한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잦은 정책 변경,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 부족, 부정부패 등으로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실물경기 회복이 완전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은 효과가 불투명한 경기 부양책을 연일 내놓을 필요가 없다. 한국 CPI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수준으로만 개선하면 성장률을 연 0.65%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 가장 효과가 큰 경기부양 조치다. 오죽했으면 뉴욕타임스가 김영란법의 국회 통과에 대해 ‘뇌물과 부패가 자리잡은 한국 경제의 획기적인 이정표’라고 치켜세웠을까.

한국 경제와 증시 안정을 위해서는 뇌물과 부패 고리를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여러 방안이 있겠으나 현 시점에서 최소한 네 가지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은 대통령을 포함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솔직하고 뚜렷한 공약이다. 어떤 뇌물과 부패도 용인하지 않을 것을 보여줘야 한다.

각종 규제, 조세 혜택 등과 같은 정책을 축소하는 동시에 필요한 규제는 자의적이지 않도록 제도화해 뇌물과 부패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것도 시급하다. 공급 측면에서도 부패와 관련된 정치인과 공무원에 대해 신상필벌(信賞必罰)을 해야 한다. 특히 김영란법에서 빠진 국회의원과 정당의 자금조달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뇌물과 부패를 줄일 수 있다. 부패 척결을 위해서는 ‘예외’를 두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