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멋쟁이는 '오버사이즈 슈트' 입는다
슈트가 돌아왔다. 최근 몇 년 동안 거리 감성의 밀리터리·스트리트 룩에 집중한 국내 남성복 디자이너들이 올해는 슈트를 전면에 내세웠다. 영화 ‘킹스맨:시크릿 오브 에이전트’가 불러일으킨 슈트에 대한 관심이 하반기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2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막한 ‘2015 가을·겨울(F/W) 서울패션위크’ 남성복 부문의 가장 큰 특징은 ‘오버사이즈 슈트 룩’이었다. 정통 슈트의 재단법에 충실하되 전체적인 선은 부풀렸다.

권문수 디자이너의 문수 권은 잠이 오지 않아 밤새 마음속으로 양을 세는 현대 남성을 재치있게 표현했다. 모델들은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거나 커다란 베개를 옆구리에 낀 채 등장했다. ‘쿨쿨’이란 뜻의 영어 ‘ZZZ’와 양 문양을 자카드(여러 색의 실로 무늬를 짠 원단) 처리해 배치했다. 오버사이즈 줄무늬 슈트에는 같은 원단의 코트형 가운을 덧입혀 스리피스로 만들었다. 남성 슈트에서 스리피스는 보통 ‘재킷·바지·조끼’인데 조끼 대신 가운을 넣었다.

한상혁 디자이너의 에이치 에스 에이치는 등 아래쪽에 주머니가 달린 무릎까지 내려오는 재킷, 줄무늬가 촘촘하게 들어간 와이드팬츠 등을 선보였다. 여성들이 자주 드는 원형·사각형·삼각형 미니 크로스백을 함께 등장시켜 성별을 파괴한 독특한 스타일을 제시했다.

제일모직 남성복 브랜드 엠비오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한씨는 지난해 자신의 브랜드를 출범시켰고 이번에 처음으로 서울패션위크에 참여했다.

이광호 디자이너의 아브도 이번 행사를 통해 성공적으로 데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브는 헤링본·트위드·체크·가죽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든 슈트를 선보였다. 특히 슈트 소재에 부피감을 강조한 오버사이즈 배기팬츠가 눈길을 끌었다. 프로 바둑기사 이창호 9단의 형인 이씨는 타임옴므·시리즈·본지플로어 등 토종 남성복 브랜드를 거쳐 2013년 아브를 론칭했다.

박종철 디자이너의 슬링스톤은 재킷 앞면에 4~6개의 주머니를 달아 정통 슈트를 교묘하게 비틀었다. 신재희 디자이너의 재희신은 캐시미어·송치·실크 등 고급 소재로 만든 슈트에 빗살무늬를 새겨넣거나 스톤(다이아몬드를 제외한 천연 보석) 장식을 촘촘하게 달았다.

김서룡 디자이너의 김서룡은 유려한 선이 돋보이는 울 소재 트렌치코트에 와이드 팬츠를 조화시켜 세련되면서도 우아한 남성상을 제시했다.

지난해보다 비중이 줄어들긴 했지만 거리 감성의 스트리트 룩도 여전히 강세다. 고태용 디자이너의 비욘드클로젯은 1990년대 부촌의 20대를 뜻하는 오렌지족을 재해석해 형형색색의 자수나 미국 화폐 단위인 달러 문양이 들어간 재기발랄한 작품을 발표했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