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설립 진보성향 문화운동단체
전작권 환수·한미훈련 반대 등 주장


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피습한 김기종(55)씨가 대표를 맡고있는 '우리마당 독도지킴이'는 진보성향의 문화운동단체다.

우리마당은 1982년 당시 성균관대 법대 재학 중이던 김 대표의 주도로 6개 소모임이 "7천만이 '우리'되어 전 반도를 '마당'으로 만들자"는 뜻으로 꾸려졌다.

1983년 10월에 '우리마당'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활동을 시작했고 1984년 3월에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공간을 마련했다.

이후 연극 공연, 국악강좌, 탈춤·풍물교실, 문예심포지엄을 주최하는 등 문화활동을 이어가면서 정당 점거, 주한미국대사관 성조기 소각 사건 등을 벌이는 시국사건에도 개입했다.

이들은 1984년 서울대, 고려대 등 5개 대학 총학생회 집행부와 함께 민정당사를 점거했다.

1985년 8월에는 회원 내부 조직을 결성, 미 대사관의 성조기를 태우기도 했다.

우리마당은 홈페이지에서 "1986∼1987년 군사정권의 호헌에 맞서 직선제 개헌운동의 중심역할을 수행하며 소위 '6월항쟁'의 참호가 됐다"며 박종철 열사의 49제, 100일제 등을 주관집행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1987년 7월 이한열 열사 장례식을 맡아 집행했다.

1988년에는 올림픽 단독개최 반대 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같은 해 8월에는 단체 사무실에 괴한 4명이 들어와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테러라고 폭로했고, 이 단체는 "올림픽 단독 개최 반대운동으로 보안사부대의 피습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현재까지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김 대표는 2007년 10월 19일 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2006년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 대표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기고 우리마당 안에 '독도지킴이'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우리마당통일문화연구소를 만들어 매달 '평화협정 시민토론회'를 개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한미연합군사훈련 반대, 남북평화협정 체결 등을 주장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리퍼트 대사를 공격한 직후에도 "남북은 통일돼야 한다"며 "전쟁반대"를 외쳤다.

신촌에 위치한 사무실은 방 2개, 화장실 1개로 주거와 사무 공간을 겸하고 있다.

출입문에는 '하나됨을 위하여, 우리마당'이라 적힌 포스터가 붙어있다.

사건 발생 후 경찰이 오전과 오후 방문해 건물주, 인근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눴으며 특별한 조사를 하지는 않았다.

이 단체는 4∼5달치 임대료가 밀려있는 등 재정상황은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noma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