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걸음을 하던 코스피지수가 5개월 만에 다시 2000 언저리까지 올랐다. 중국의 추가 금리인하 소식과 이달 말로 예정된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 완화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리스 부채연장 합의, 미국의 조기 금리인상 우려 완화 등도 주가를 끌어올린 요인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국내 증시가 추세 상승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견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박스피’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주가가 2012년 이후 1800~2100 사이 박스권을 장기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상승은 설 연휴 이후 어제까지 1조원 넘는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외국인이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언제 다시 팔고 나갈지 모른다. 언제부턴가 한국 증시는 단기 시세차익만을 노리는 투기장처럼 돼버렸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각종 제도가 상장기업을 옥죄는 방향으로 바뀐 탓이 크다. 상장에 따른 자금조달과 상장유지 및 자금회수가 수월해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다. 상장사가 되면 엄격한 공시의무를 지고 대주주 의결권 제한, 사외이사 선임요건 강화, 감사위원회 의무설치 등 수많은 규제를 받게 된다. 이제는 배당까지 강압적으로 높게 주어야 한다. 잘못하다간 투기세력의 먹잇감이 되고 경영권 위협까지 받는다. 주가라도 급락하면 투자자 항의가 빗발친다.

이런 식이니 우량기업들이 상장을 꺼리지 않을 수 없다. 오너 지분이 큰 기업은 더욱 그렇다. 기업공개(IPO) 규모가 2010년 4조3000억원에서 2012년 4600억원으로 쪼그라든 것이 잘 말해준다. 지난해에는 1조7000억원으로 늘었지만 전통적인 자금조달용 IPO보다는 기업인수목적 회사인 스팩(SPAC)과 구주매출을 통한 IPO가 급증했다.

결국 신규 우량기업 공급이 거의 끊기고 전통 상장사들의 성장성은 한계에 도달하고 말았다. 정부는 금융개혁을 4대개혁 중 하나로 꼽고 있지만 상장사를 옥죄는 각종 규제부터 푸는 게 급선무다. 그래야 수십년 앞을 내다보고 상장하는 기업도 생기고 주가도 박스권 상단을 뚫고 훨훨 날아갈 수 있다. 정부는 증시가 중산층 자산증식의 장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을 우대하라. 지금은 창업자 이익을 회수하거나 성장이 끝난 기업의 ‘땡처리’를 원하는 대주주가 있는 기업만 상장하고 있다. 상장하려는 기업가들에게 미쳤냐고 되묻는 증권시장이 어떻게 국민의 사랑을 받겠는가. 자본시장 정책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