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착시(錯視)
제주 ‘신비의 도로’(일명 도깨비도로)는 오르막길로 보이지만 기어를 중립에 놓아도 차가 슬슬 앞으로 간다. 실제론 3도가량 내리막길이다. 1980년대 초 신혼부부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산록도로 초입엔 제2 도깨비도로도 있다. 도깨비도로는 전국 각지에서 발견된다. 의왕 하우고개, 세종 비암사 입구, 제천 청풍호반, 화천 호음고개, 태백 두문동재, 칠곡 요술고개 등 10여곳이다. 모두 관광명소로 뜬다니 착시가 돈벌이도 되는 셈이다.

착시(錯視·optical illusion)는 사물의 크기 방향 각도 길이 등이 실제와 달리 보이는 착각의 일종이다. 독일 수학자 프란츠 뮐러리어가 1889년 고안한 뮐러리어의 도형이 대표적이다. 같은 길이의 두 직선이 양쪽 끝의 화살표시가 안쪽이냐 바깥쪽이냐에 따라 길이가 달라 보이는 것이다. 네덜란드 판화가 에셔는 영국 수학자 펜로즈의 ‘불가능한 도형’을 응용해 착시를 일으키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예부터 착시는 건축의 중요한 고려 대상이었다. 고대 그리스 건축물은 대개 기둥 중간부가 약간 볼록하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엔타시스(entasis) 형태다. 기둥 굵기가 일정하면 중간이 오목해 불안정해 보이는 착시를 유발하는 탓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과 같은 원리다. 석탑의 중심기둥을 모서리보다 높게 하는 ‘귀솟음’, 탑신의 기둥을 안쪽으로 기울이는 ‘안쏠림’도 착시 교정기법이다.

일상의 착시는 흔하다. 이발소 표시등의 빗금이 아래로 내려가고, 선풍기가 실제 회전과 반대로 도는 듯한 것도 눈의 착각일 뿐이다. 하이힐, 코르셋은 착시를 응용해 여성을 날씬하고 풍만해 보이게끔 해주는 사례다. 헤어스타일과 줄무늬 옷으로 얼굴, 체형의 단점을 커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착시가 유발하는 위험도 많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가속도로 인해 하늘과 바다를 혼동하는 비행착시(vertigo)는 추락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남극에선 대기가 워낙 투명해 얼음의 원근을 혼동하게 된다고 한다. 신기루(mirage)는 불안정한 대기층에서 빛이 굴절돼 물체의 위치가 다른 곳에서 보이는 착시 현상이다.

최근 영국에서 색깔 논란을 빚은 드레스가 화제다. 인터넷과 SNS에서 네티즌들이 이 드레스를 놓고 청색·흑색파와 흰색·금색파가 갈려 갑론을박한 덕에 드레스가 ‘완판’됐다고 한다. 같은 색도 빛의 양에 따라 달리 인식되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눈은 가장 나쁜 증인’이란 서양 속담이 떠오른다. 우리가 보는 게 과연 진실일까.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