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왜 20000원보다 19900원에 선뜻 지갑 열까
미국에서 2200만건의 중고차 매매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주행거리가 7만9900~7만9999㎞ 사이인 자동차는 8만~8만100㎞ 사이에 있는 차보다 평균 210달러 비싼 값에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7만9800~7만9899㎞ 사이에 있는 차들과의 가격 차이는 10달러밖에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행거리의 차이는 같지만 단지 앞자리 숫자가 8로 바뀌면서 가격이 대폭 떨어진 것이다.

사람들의 이런 경향을 ‘왼쪽 자릿수 편향’이라고 부른다. 자릿수가 많은 숫자를 볼 때 왼쪽 숫자에 가장 큰 비중을 둬 정보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이런 편향은 중고차 시장에서처럼 금전적 손해를 보기도 한다. 판매업자들은 사람들의 이런 속성을 이용해 1만㎞ 단위가 올라가기 전의 자동차를 내놓고 비싼 값에 팔곤 한다. 7만9999㎞ 자동차보다 8만1㎞ 차량을 210달러 싸게 사는 편이 합리적 소비인 것이다.

[책마을] 왜 20000원보다 19900원에 선뜻 지갑 열까
사고의 오류는 이처럼 사람들이 일상에서 무심코 저지르는 잘못된 판단 50가지 사례를 정리해 보여준다. 저자들은 “사고의 오류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며 “잘못된 생각으로 돈을 축낼 뿐만 아니라 전 재산을 날리기도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책은 행동경제학 이론을 바탕으로 경제적 선택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행동을 살펴본다. 행동경제학은 전통적 경제학과 달리 인간의 완전한 합리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따금 보여주는 불합리한 행동의 배경에 어떤 논리가 숨어있는지 해명한다. 각각의 사례 말미에 간단한 해결책도 함께 제시해준다.

‘작은 선물’ 때문에 큰 소비를 하는 사례도 소개됐다. 학교 설립 기금 마련을 위한 편지를 보낼 때 세 그룹으로 나눠 첫 번째 그룹엔 편지만 보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그룹에는 각각 엽서 한 장과 네 장을 동봉했다. 효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편지만 받은 그룹은 수신인 중 12%만 기금을 보냈다. 엽서 한 장을 받은 곳에선 14%로 늘어났고, 네 장을 받은 그룹은 21%가 기금을 냈다. 프랑크푸르트의 한 레스토랑은 고객에게 원하는 대로 뷔페 음식값을 내게 했다. 평소 가격은 7.99유로였는데 고객들은 평균 6.44유로를 냈지만 방문객이 60% 늘어나 이익은 30%가량 증가했다. 저자들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일단 받고 나면 애초에 원치 않던 보답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며 “모든 선물은 그것이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밖에도 정보 과잉에 따른 정보 처리의 오류, 왜곡된 비교에서 오는 ‘차별성의 편향’,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선택에 혼란을 느끼는 ‘선택의 역설’, 커다란 잘못도 반복해서 들으면 믿어버리는 ‘반복의 오류’, 똑같은 것인데도 자신의 소유라는 이유로 과오를 범하는 ‘보유 효과’ 등 다양한 사고의 오류를 제시한다.

저자들은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조언의 배후에는 적지 않은 낙관론이 깔려 있다”며 “우리는 학습능력을 신뢰하며 인간은 자신의 결함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말로 마무리한다. 시행착오를 통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