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치 선진화를 이룩하려면
대한민국의 정당이라면 국민의 삶을 이롭게 할 수 있는 보편적이며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창달을 목표로 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므로 여당이든 야당이든 당헌이나 강령에는 물론 당 대표의 명문화된 취임사에도 이런 가치에 부합하는 국가관, 안보관, 경제관 등 국가 운영에 긴요한 내용들이 충실하게 담겨 있어야 한다.

당헌 및 강령과 함께 당 대표의 취임 연설문을 모아놓는다면 정당이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 등을 표현하는 정체성과 이를 위한 정책 방향, 그리고 그런 목표 달성을 위해 역사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국리민복을 위한 국가의 역할과, 대규모 사회에서 구성원들 간의 협동이 어떻게 이뤄져 국민들이 물질적 삶을 유지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감성과 지성이 어울린 진정성을 엿볼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대한민국 국민’임에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조국애를 솟구치게 하는 언어들로 충만하다면 더욱 감동스러우리라.

그런 점에서 이번 야당 신임 대표의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취임 일성은 실망스럽다.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국내외적 형편을 살핌도 없고 미래에 대한 성찰과 인식, 그리고 비전을 전혀 엿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야당의 목표도 정권을 잡아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것일진대 지금의 행태로는 그럴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집권해서는 안 된다는 신호만 잔뜩 보내고 있다. 이는 그렇게 행동해도 유권자들의 표를 얻어 집권할 수 있다는 고질적 무능과 불성실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지금을 정치 부재 상태라고 한다면 그것은 곧 정치 철학의 빈약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당들이 정치 세계에서 벌이는 경쟁의 목적은 집권하여 국리민복과 국태민안을 위하는 것이고, 그 수단은 이념과 정책이다. 그런데 이념과 정체성은 모호하고 정책은 오락가락하기 일쑤다. 그래서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사람들과 정치 자체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발전을 지향하는 정당이라면 먼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깊은 인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꿈꾸는 세상과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꿈과 가치 달성을 위한 확고한 국가관, 안보관, 경제관은 있는가? 또한 그런 관(觀)을 확립하고 실천할 수 있는 지적 토대를 스스로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

우선 당헌이나 강령이 표현하고 있는 정당의 정체성과 실천 의지를 점검해 보시라.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이라면 그 보수가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존중하는 토대 위에 형성되는 자생적 질서를 보존하고, 변화를 수용하며, 제한된 정부를 옹호하는 자유주의적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지를 점검해봐야 한다. 또한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이라면 그 진보가 자생적 질서에는 문제가 많으므로 국가가 이를 재편하여 국민의 삶을 개선하려는 사민주의적 진보인지, 제3의 길인지, 또 그 진보 노선이 진정 국민의 삶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길인지를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전문가 집단의 자문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묻고 토론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추고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런 지력(知力)을 갖추지 못하고 지금과 같이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가 모호하고 인기 영합적이며 임기응변식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보수든 진보든 모두 공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동안 한국 사회를 풍미했던 이른바 ‘안철수 현상’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지금의 한국 정당들은 자각해야 한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진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탈피하고 진정성을 회복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런 현상은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행한 일이다. 국민들의 의식이 온전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