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날엔 한식을…특급호텔 셰프 된 '대장금 키드'
/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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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구 기자 ] 서울 광진구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 한식당 ‘온달’ 조리팀에서 일하는 손단아씨(사진).

그는 중학생 시절 드라마 ‘대장금’을 보며 꿈을 키웠다. 목표가 뚜렷해지자 거기에 매달렸다. 아예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특성화고(한국조리과학고)에 진학했다. 고교 때 이미 한식·중식·일식·양식·제빵·제과 6개 분야 자격증을 땄다.

그중에서도 한식이 가장 메리트 있다고 생각했다. 한식을 가장 많이 먹어봤고 잘 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그는 6개 자격증 가운데 한식 자격증을 가장 먼저 땄다. 이후 여러 곳에 현장실습을 나가면서 한식으로 마음을 굳혔다.

손씨는 한식을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찾아 전문대(배화여대 전통조리과)에 진학했다. 4년제대냐, 전문대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전통 한식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커리큘럼은 수도권에서 이 학교가 유일했다. 그는 “대학 4년을 요리 공부에 투자하는 건 아까웠다. 요리는 현장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빨리 취직해 경력을 쌓자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정말 이룰 수 있는 꿈인지 확인했고, 확신이 선 다음엔 줄곧 한 길만 팠다. 고교 시절부터 매년 3권씩 작업노트를 써 가며 스스로를 단련했다. 20대 후반에 유명호텔 한식당 5년차 셰프가 된 건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잡프런티어 시대, 전문대에 길을 묻다] (12)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온달' 조리팀 손단아
- 전공을 살려 취업했다. 전통음식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는지.

“학교를 졸업하고 2010년부터 이곳에서 일했다. 반찬과 후식 파트를 담당하고 있다. 중2 때였는데, 드라마 ‘대장금’이 정말 인기였다. 그때부터 한식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그전부터 요리를 좋아하긴 했지만. 고교도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한국조리과학고에 갔다.”

- 고교 때부터 확실히 진로를 정했는데.

“내가 요리에 관심 있다는 걸 아니까 부모님도 권하셨다. 전문성을 살려 일할 수 있고 직장 생활도 오래 할 수 있다면서. 고교 입학 때부터 대학도 조리전공을 했고, 직장 들어와서도 5년간 일했다. 중간에 실습도 나가고 휴학할 때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모두 요리 관련 일이었으니까, 요리에 관심 갖고 이쪽 일 한 게 10~12년 정도 되는 것 같다.”

- 요리에도 여러 분야가 있는데 한식을 택한 이유는 뭔가.

“고교 때 자격증을 6개 땄다. 한식부터 중식 일식 양식 제과 제빵까지. 대부분의 요리를 가르치는 특성화고라 도움이 됐다. 여러 분야 경험을 못했으면 정할 때 고민됐을 것 같은데, 우선 다양하한 분야를 배우고 그중에 판단해 선택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현장실습에서도 어느 쪽이 적성에 맞는지 해 볼 수 있었다. 내가 항상 접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한식이었다.”

- 호텔은 양식당과 어울린다는 편견이 있는데.

“그런 고정관념이 있긴 했다. 사실 한식당은 비용이 높고 재료 손질이나 일손이 많이 필요한 편이기도 하고. 그래선지 호텔에 한식당이 적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특1급 호텔로 인정받으려면 한식당이 있어야 한다. 한식당이 있고 없고가 특급호텔을 가리는 기준이 됐다.

또 하나, 보통 여자가 요리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업에선 다르다. 고교 때도 그랬고 지금도 남성 비율이 높다. 가정요리와는 다르니까. 수십kg짜리 식재료를 옮기고 불과 칼을 다루는 직업이다. 업무 특성상 거칠고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다.”

- 의외로 남성 셰프가 많은 이유가 그건가.

“아무래도 그렇다. 우리 호텔도 조리팀 250여명 가운데 여자는 30명 정도밖에 안 된다. 여자를 많이 배려해준다고 해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여자라도 20~30kg 정도 식재료는 혼자서 짊어지고 옮기곤 한다.”

- 만원짜리 파스타는 당연한데 만원짜리 된장찌개는 비싸다고들 생각한다.

“인식의 차이랄까. 한식은 가까이서 많이 접하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면이 있다. 나도 할 수 있고 엄마도 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 내 또래나 젊은 워킹맘들에겐 한식이 쉽지 않은 ‘스킬’이 됐다. 한식이 제대로 된 ‘요리’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한식 뷔페도 많이 생기고, 이제 특별한 날 사 먹는 외식 메뉴가 된 것 같다.”

- 한식이 젊은층에도 인기 있는 이유는 뭘까.

“한식의 특별함이 재발견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은 특별한 날 찾는 메뉴가 양식·중식·일식이었다. 한식도 이젠 그런 메뉴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가끔 ‘한식대첩’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는데, 한식의 뿌리라든지 전통을 보여주니까 사람들 인식도 달라지는 것 같다.

건강식이란 이미지도 한몫 했다. 기름진 양식이나 중식에 비해 한식은 웰빙 요리라는 차별성이 있다. 집에서 손쉽게 해먹는 음식이었는데, 건강에도 좋고 정성도 들어가 있는 음식인 거다. 이런 점이 부각돼 많이들 찾는 것 아닐까.”

[잡프런티어 시대, 전문대에 길을 묻다] (12)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온달' 조리팀 손단아
- 설 연휴를 맞아 명절 음식 레시피를 추천한다면.

“딱 정해진 레시피나 노하우보다는 가까운 사람의 입맛에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 집마다 오랜 노하우가 전통으로 계승되고 있을 테니 가풍을 살리는 게 좋을 것이다. 어머니의 손맛이라고 해도 좋고.”

- 집 음식은 또 저마다의 개성이 있다는 얘기같은데.

“요리엔 정답이 없다. 조리 노하우보다 그때의 상황이나 풍습이 중요한 요인이 된다. 당장 나부터도 집에선 전혀 다른 음식을 한다. 직장에선 모양을 위해 식재료를 많이 잘라내는데 가정요리는 안 그렇다. 아껴 쓰고 다시 쓰고. 집에선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 (웃음)”

- 전문대 진학을 택한 이유가 있다면.

“고교 때 이미 웬만한 요리를 배운 상황이었다. 일반 대학 요리 관련 학과를 갈 필요가 없는 거다.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하니까. 어떤 대학을 가야 도움이 될까 생각했는데 배화여대 전통조리과가 장점이 있더라. 수도권 대학 가운데 한식이란 전문 분야를 특화시켜 커리큘럼을 짠 유일한 곳이었다. 진로가 확실한 학생들이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캠퍼스에 가보면 알겠지만 장독대가 늘어선 풍경부터 다르다. 메주나 된장, 고추장 같은 전통 발효음식도 만들고. 궁중음식, 전통의례 음식, 폐백 이바지 음식, 전통병과까지 배운다. 적어도 한식 관련 분야에선 졸업 후 곧바로 현장에 투입돼도 제 몫을 할 수 있을 정도다.”

- 고교부터 대학, 취업까지 정말 생각이 확실했다.

“대학 4년을 꼬박 요리 공부에 투자하는 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는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 빨리 취직해 경력을 쌓는 게 낫다고 생각해 무(無)시험전형으로 배화여대에 들어갔다. 덕분에 남들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고3 때 학생 신분으로 호텔에서 실습하면서 일을 배웠다. 일단 취직한 뒤 직업을 바꾸기는 어렵지 않나. 막연한 생각이나 풍문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치며 이 일이 적성에 맞는지, 내가 버틸 수 있을지 경험한 다음 결정할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손단아씨의 작업노트.
손단아씨의 작업노트.
- 대학 땐 어떤 학생이었는지.

“2년밖에 안 됐지만 시간이 아까웠다. 수업 때를 빼면 늘 도서관에 있었다. 주말엔 현장 경험도 쌓고 학비도 벌 겸 아르바이트를 했다. 목표가 확실했기 때문에 MT에 가거나 놀러가는 건 엄두도 못 냈다. 후배들에게는 실수든 경험이든 모든 걸 기록해두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 경험담 같다.

“그렇다. 요리란 게 손으로, 혀로, 머리로 오감을 동원해 기억해야 하는 거다. 실수한 부분은 기록했다가 다른 음식 할 때 적용할 수도 있고. 직장에선 누가 붙들고 가르쳐주지 않는다. 스스로 달려들어 체험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을 기록해 놓으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 이 작업노트들이 그 결과물인가.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했다. 매년 파일로 3권씩 정리했다. 일종의 포트폴리오 같은 거지. 조리법을 스크랩하고 메모하면서 몰랐던 부분을 다시 보게 되더라. 시야와 생각의 크기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실수 줄이고 업무에도 빨리 적응하고. 발 벗고 나서서 배우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잘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잡프런티어 시대, 전문대에 길을 묻다] (12)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온달' 조리팀 손단아
◆ 나에게 전문대란…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실전에 맞춰 깊이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곳. 한식을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는 배화여대 전통조리과는 조리를 전문으로 배운 특성화고 학생에게도 특별한 학교였다. 기본이 되는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제과 제빵뿐 아니라 전통발효음식, 전통병과, 궁중음식, 전통의례 음식까지 배우고 실습하는 보석 같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다. 나처럼 하고 싶은 일이 뚜렷한 학생들이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는 전문대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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