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생각 밖이었다. 대기업 영업직원이라면 소주 10병을 마셔도 거뜬하고 수려한 말솜씨와 빠른 머리회전으로 상대의 혼을 쏙 빼놓을 수 있을 것이란 상상은 빗나갔다.

해군사관학교 출신인 CJ제일제당 영업담당 오상철 대리(34)의 주량은 소주 반 병. 오 대리는 “술은 약하지만 주말에도 매장주가 전화를 걸어 필요한 것을 요청하면 거절하지 않고 재빨리 어려움을 해결해줬던 ‘밀착 영업’이 나만의 노하우”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영업에 접목해 좋은 결과를 얻은 영업맨에게 주는 상인 ‘최다BP(베스트 프랙티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는 탁월한 영업실적 덕분에 동기들보다 1년 앞서 입사 3년 만에 대리로 승진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영업팀에서 일하는 임수정 과장(39)은 “대학 시절 동아리 회장, 과대표를 맡으면서 관계를 잘 유지하는 법을 배운 게 영업의 밑거름이 됐다”고 대답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3년 전 대상(주)과 한경희생활과학에서 유통·법인영업으로 잔뼈가 굵은 이공계 출신 임 과장을 영업전략팀으로 스카우트했다.

롯데칠성음료 주류사업부 대형마트팀에서 일하다 최근 해외전략팀으로 옮긴 이종현 대리(33)는 “마트 명절 선물세트 진열을 돕다 어제도 새벽 1시 반에 퇴근했다”며 “영업맨에게 필요한 역량은 지치지 않는 체력과 열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주류업계는 설 명절이 대목이어서 이때를 전후해 매출이 급증한다고 설명했다.

1월30일 오후 월말 마감 압박과 설 명절 준비로 눈코뜰 새 없이 바쁠 것 같은 3인은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인터뷰는 동국대 경력개발센터 ‘특공대(특별공채 대비반)’ 식품영업 분야 취업준비생들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서울역 롯데마트에서 사진을 찍은 뒤 스타벅스커피코리아로 자리를 옮겨 취준생들이 묻고 영업맨들이 답하는 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취준생의 궁금증 ‘영업맨 24시’를 정리했다.

[JOB] 기업 최전선에서 싸운다, 영업맨
▷스타벅스에도 영업이 있는 줄은 몰랐다.

▷임수정 과장(임)= 2012년 10월 특판영업 담당자로 입사했다.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B2B 영업이 주된 업무다. 회사 체육대회와 창립기념일을 겨냥해 머그컵, 텀블러, 상품권, 기프트카드를 판다. 심지어 돌잔치 사은품으로도 팔린다. 신규 사업이라 챙길 게 많다. 스타벅스 영업담당자는 딱 두 명뿐이다.

▷지난해 클라우드맥주가 ‘핫’했다. 비결이 뭔가.

▷이종현 대리(이)= 클라우드의 성공은 맛 영업 홍보 3박자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작품이다. 클라우드를 맛본 소비자의 구전 마케팅과 ‘처음처럼’ 소주 영업맨의 발품, 여기에 전지현의 고급스러운 TV 광고가 적중했다.

▷영업에는 어떤 분야가 있나.

▷오상철 대리(오)= CJ제일제당 영업은 크게 세 가지다. 동네슈퍼와 할인점 소비자 영업(B2C),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에 납품하는 기업영업(B2B) 그리고 글로벌영업 담당자가 있다. 현재 B2C 안에서 단위슈퍼 10개와 대리점 1곳 영업을 맡고 있다.

▷이= 주류영업은 음식점을 관리하는 유흥판촉팀, 주류상 관리영업인 도매영업, 할인점·대형매장을 관리하는 유통영업 그리고 면세·군납을 담당하는 특수영업으로 나뉜다. 유흥판촉팀은 음식점 판촉비용, 현수막, 메뉴판을 지원한다. 서울에는 강남·강북팀이 있다. 영업사원 한 명이 평균 200곳의 음식점을 맡는다. 도매영업은 진짜 을(乙)이다. 대리점주 집안의 경조사를 챙겨야 하고 카톡(카카오톡)을 통해 수시로 형님아우, 누님동생 하면서 관계를 트고 있어야 한다. 유통영업은 매장만 담당하는 대형매장팀, 마트를 책임지는 본부팀이 있다.
[JOB] 기업 최전선에서 싸운다, 영업맨
▷‘영업은 술’이라고들 하던데.

▷임= 영업사원은 음주가무에 능해야 한다는 말은 옛날얘기다. 솔직히 집에 일 때문에 늦는다고 전화할 때도 일보다는 동료와 ‘한잔’ 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량은 소주 두 병 정도다.

▷오= 소주 반 병도 제대로 못 마신다. 직장 내 회식은 있지만 거래처 파트너와 술 마실 일은 거의 없다. 회식도 대부분 1차에서 끝내고 2차는 상대방 취향을 고려해 영화를 함께 보거나 볼링 등 스포츠활동을 하는 추세다.

▷‘실적 스트레스’도 심할 것 같다.

▷오= 1년 열두 달 매월 ‘목표필달’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지만 성취감도 크다.

▷임= 신입 땐 영업이 싫었다. 인사팀에 직무전환을 요청했을 정도였다. 너무 빡빡하고 끌려다닌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업 1등상을 받은 뒤 자신감을 얻었다. 영업은 숫자로 결과가 뚜렷하게 나오기 때문에 고생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

▷야근이 많을 것 같다.

▷이= 주류 영업사원 특성상 거래처(업소) 영업시간에 맞춘 업무로 인해 밤늦게까지 업무가 이어지기 십상이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밤늦게까지 영업하다보니 영업맨을 ‘생계형 SA(sales analyst)’라고 부른다. 즉 절박한 환경에서 배수진을 치고 일하는 영업사원이란 뜻이다.

▷오= 매장 내 적재적소 진열, 주 동선 확보, 주도권 싸움도 치열하다. CJ는 2013년부터 ‘밀어넣기(목표 달성을 위해 잔여물량을 거래처 창고에 단번에 판매하는 것)’를 지양하고 있다. 월초·월중에 물량을 넣어 실판 위주 채워넣기 영업을 한다.

▷임= 법인영업은 운도 따라야 한다. 설날·추석, 근로자의 날, 회사 창립기념일이 스타벅스에는 4대 명절이다. 이때 대박나지 않으면 1년이 힘들다.

▷‘나만의 영업 무기’는 뭔가.

▷임= 신입 때부터 배운 것은 ‘답은 현장에 있다’는 것이다. 놀더라도 매장에서 노는 습관을 가졌다. 지금도 스트레스 받으면 할인점 매대를 돈다. 그럼 보인다. 둘째는 성실성이다. 무조건 찾아가 인사하고 같이 청소하고 물품 밴딩을 열심히 했더니 나를 무시하던 할인점MD가 그때서야 인정해주더라. 당시 할인점 15~20곳을 돌며 그렇게 했다.

▷오= 거래처와 관계를 지속하려면 성실성이 필요하다. 주말에 거래처에서 전화가 오면 솔직히 싫다. 하지만 무조건 다 받았다. 남다른 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은 매장주가 원하는 것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충족시켜준 데 있었다.

▷거래처와의 갈등은 어떻게 푸나.

▷오= 거래처와의 갈등은 피할 수 없지만 어떻게든 푸는 게 중요하다. 다툼은 더 돈독해질 수 있는 기회다. 거래기업 점주는 20년 이상 영업한 사람이다. 이길 수 없다. 영업을 잘 하려면 제안 영업을 해야 한다. 점주에게 최적의 조합제품을 제시해 점주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그때부터 주도권은 영업사원에게 넘어온다.

▷이= 거래처가 갑일 때가 많다. 처음 신입이 오면 길들이기를 한다. 어느 정도 알 때가 되면 또 기어오를 것에 대비해 말도 안되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 신입 때 힘들다고 그만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입 때 많이 당하면 내성이 생긴다. 그러면서 거래처의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주면 어느새 내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집에 온통 자사 제품뿐이겠다.

▷임= 영업을 하면 애사심이 높아진다. 내가 의심스러우면 못 판다. 지금도 대상 식품을 먹고 한경희생활과학 가전을 쓰고 스타벅스 커피만 마신다.

▷오= CJ는 없는 게 없다. 오늘 아침식사는 햇반, 스팸, 김자반으로 만든 아내의 주먹밥으로 해결했다.

▷이= 술집은 ‘처음처럼’ 소주 있는 집만 간다. 이 때문에 친구하고 싸울 뻔하기도 했다. 클라우드 맥주를 안 파는 집은 얼씬도 안 한다. 사이다는 칠성, 콜라는 펩시만 마신다. 외식을 가면 TGI프라이데이즈, 커피는 엔제리너스, 놀이공원은 롯데월드만 간다. 완전 롯데 골수팬이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