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짐승 뼈 위에서 발견한 漢字의 기원
청나라 광서제 25년(1899년) 국자감 좨주였던 왕의영이 말라리아에 걸린 친척을 치료하기 위한 약재로 용골(龍骨)을 구했다. 용은 가상의 동물이라 용골이란 있을 수 없었고, 사실은 흙 속에서 캐낸 동물의 오래된 뼈였다. 왕의영은 이런 뼈를 달이는 과정에서 날카로운 칼로 새긴 듯한 기호들을 우연히 발견했다. 더 많은 용골을 사들여 연구한 결과 이 기호들은 거북의 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기록을 새긴 사료이자 한자의 초기 자체(字體)임이 밝혀졌다.

《한자의 탄생》은 이렇게 발견된 갑골문에 담긴 문화의 유전자를 문자학의 좁은 방법론에서 벗어나 문학과 역사, 고고학, 사회학 등 폭넓은 인문·사회학 지식을 토대로 흥미롭게 풀어낸다. 예컨대 갑골문에는 잔인한 글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버릴 기(棄)’는 두 손으로 삼태기를 들고 아직 피가 묻어있는 갓난 아기를 내버리는 모습을 본뜬 글자다. ‘작을 미(微)’는 사람이 곤봉을 들고 노인을 학대하는 모양이다.

난폭한 야생 돼지가 가축으로 자리잡는 과정도 갑골문을 통해 알 수 있다. 갑골문에서 돼지는 시(豕)로 나타냈다. 돼지는 원래 용맹하고 포악한 동물이었다. ‘발 얽은 돼지걸음 축’은 거세당한 돼지를 가리킨다. 발정하지 않고 용맹함도 잃어버린 돼지는 이때부터 가축으로서 더 이상 반항하지 않는 대신 마구 먹어대면서 살이 쪘다. 돼지가 즐거운 마음으로 뿌리 내린 곳이 바로 ‘집 가(家)’다. 회초리를 높이 들고 있는 모양을 상형한 ‘가르칠 교(敎)’의 갑골문은 체벌 교육의 오랜 역사를 보여준다.

대만 최고의 문화비평가로서 ‘대만의 프랑수아즈 사강’으로 불리는 저자는 이런 식으로 한자의 탄생 과정과 글자에 담긴 사회·정치적 의미 등을 종횡무진 풀어낸다. 갑골문이 금문(金文)을 거쳐 전서, 예서, 해서, 행서로 발전하고 상형·회의·지사·형성·전주·가차 등 육서(六書)를 통해 확장, 정련되는 과정의 이야기들이 지적 재미를 배가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