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메가트렌드에 부합하는 구조개혁을
을미원단(乙未元旦)의 시대상황은 복잡다단하지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변화’다. 그리고 세계 경제의 장기침체 속에서 나라별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고용 확대’다. 정보화, 세계화, 기후변화, 고령화 등 메가트렌드가 지구촌을 휩쓰는 가운데 대부분의 국가에서 투자와 고용은 부진에서 헤어날 줄 모른다. 양적완화와 같은 극약처방도 경기를 살리지 못하는 까닭은 시대조류에 대한 대응이 방향을 잘못 잡고 지지부진한 탓이다.

첨단 정보통신기술은 재래식 생산부문의 자동화와 효율화를 통해 더 적은 인력이 더 많이 생산하게 만들었다. 신기술이 많은 일자리를 퇴출시키면서도 경제는 성장하는 소위 ‘고용 없는 성장’이 그 결과다. 그런데 청년실업문제 해결이 시급하고, 연금 재원 고갈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려면 고령인력에게도 일자리를 줘야 한다. 정보화 신기술은 일자리를 오히려 줄임으로써 고용문제를 어렵게 몰아가고 그 결과 연금문제까지 꼬이는 꼴이다.

그러나 디지털 신기술 덕분에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새로운 일거리도 많이 가능해졌다. 예컨대 ‘공유경제’가 그것이다. 내가 쓰지 않을 때 내 설비를 다른 이들에게 임대해 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에게 더 좋다. 과거에는 때를 맞춘 임대 희망자를 찾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첨단 정보통신기술의 보급은 소유주가 임대 등의 방법으로 자신의 설비를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동안 방치해오던 유휴설비가 공유경제의 활성화로 가동되면 설비투자를 그만큼 줄여도 된다. 설비를 새로 설치하는 대신 이미 있는 유휴설비를 쓰면 비용을 크게 절감하므로 공유경제는 유망한 신(新)산업이다. 현재로서는 ‘우버’와 수시 민박 정도가 대표적 사례지만 앞으로는 설비 가동이 필요한데도 전통적 소유권 행사방식 때문에 가동률이 낮은 모든 설비 부문에 공유경제가 확산될 것이다. 설비 훼손과 계약 위반에 대한 보상 시스템을 잘 갖추고, 예상되는 부작용에 적절히 대비하도록 제도를 보완하면 공유경제의 확산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디지털 기술로 가능해진 신산업은 공유경제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급증한 ‘직구(直購)’ 물량을 수송하느라 수입부품 수송이 지연된다는 뉴스도 있었다. 전자상거래와 금융거래, ‘크라우드펀딩’, ‘3차원(3D)프린팅’,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 등 이제 막 시작했거나 곧 시작할 신산업은 많다. 그러나 현행 제도와 기득권의 저항 같은 걸림돌이 하나둘이 아니다.

신기술과 신산업의 수용에는 인력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고용의 유연성이 필수적이지만 고용보호법제와 강성노조가 가로막고 있다. 나라 경제가 신산업과 신기술을 수용하려면 신규 창업의 길을 터야 한다. 그런데 현행 제도와 규제는 신기술에 기초한 신산업 등장을 가로막기 일쑤다. ‘우버’는 공유경제의 대표주자인데 일반 택시들의 반대가 거세다. 서울시는 ‘우버’가 무허가 택시임을 내세워 ‘우파라치’까지 동원할 모양이다.

전통적 틀과 신조류는 곳곳에서 이렇게 충돌한다. 현행 금융규제는 크라우드펀딩을 신종 사기쯤으로 의심할 것이다. 3D프린팅은 첨단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낸 미래의 제조업인데 그 상용화 과정을 수용할 제도는 현재 없다. 빅데이터는 개인정보 보호의 장벽을 넘기 어렵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은 수많은 일거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실업이 만연한데도 새로운 일거리들은 제도와 규제에 막혀서 동면 중이다.

이 일거리들을 활성화시키면 디지털 세대의 청년실업은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임금피크제와 연계한 정년연장은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으면서 고령인력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다. 고용 확대와 연금재정건전화를 한꺼번에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신기술 산업을 수용하는 진취적 구조개혁은 새해 벽두부터 당장 착수해야 할 시대적 소명이다. 신산업별로 파생할 문제들을 정확하게 예견하고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틀을 모색하는 작업부터 시작하자.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shoonlee@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