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용 한국상장사협의회 회장이 최근 한경과의 인터뷰에서 차등의결권 주식(dual class stock)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1주=1의결권’이란 일률적인 도식에서 벗어나 선진국처럼 대주주의 보유주식 1주당 많게는 수십개, 수백개의 의결권을 부여해 안정적인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투자 유치가 활발해져 경제가 선순환하고, 해외 유수기업을 한국 증시로 끌어오는 동시에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의적절한 제안이다.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가 미국 증시로 간 것은 좋은 본보기다. 이 회사의 마윈 회장은 당초 홍콩 증시 상장을 추진했지만, 1주=1의결권 벽에 막혀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는 뉴욕 증시를 선택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알리바바는 지난 9월 기업공개를 통해 페이스북보다 많은 250억달러의 자금을 한꺼번에 조달했다. 미 증시 사상 최대 규모였다. 지분율이 9%도 안 됐던 마윈 회장 본인은 상장 이후에도 소프트뱅크(34%) 야후(23%)보다 많은 의결권을 확보해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홍콩 리카싱 회장을 제치고 아시아 갑부 1위가 됐다. 홍콩이나 한국이었다면 꿈도 못 꿀 성공 신화다.

기업이 커질수록 대주주 지분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주식 배당소득이나 경영자로서의 연봉으로는 자본출자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업을 승계할 3~4세라면 더욱 그렇다. 기업 밖에서 배당만 받는다면 선대가 애써 쌓은 부의 편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부의 증대도 기약할 수 없다. 게다가 물려받은 지분은 경영권을 유지하려면 팔 수도 없다. 어떻게 해서든 기업 안으로 들어와 참호를 파고 경영에 끼여들고, 상속·증여세를 낼 자금을 만들기 위해 무리수를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제 차등의결권을 적극 검토해볼 때가 됐다. 순환출자 등 많은 문제를 간단하게 풀 수 있다. 구글 페이스북 포드 등이 주당 의결권이 10개인 차등주를 통해 경영권 우려 없이 거액의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워런 버핏의 벅셔해서웨이 차등주는 의결권이 무려 1만개다. 한국도 2012년 개정 상법 시행으로 의결권, 이익배당 여부 등에 따라 최대 700개 이상의 종류주식을 발행할 근거는 이미 갖추고 있다. 어차피 대부분의 소액투자자는 주가 차익과 배당이 주된 관심사다. 일부 대주주에 대한 특혜 시비를 못 넘어 구글도 하고 알리바바도 하는 것을 한국 기업만 못 하고 있다. 차등의결권 주식이 있어야 2세, 3세의 회사 내 진입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