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유시장의 패권을 잡기 위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미국 간 ‘치킨게임’이 지속되면서 한계 상황에 몰린 국가와 원유기업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통화위기를 겪고 있는 러시아 외에도 OPEC 회원국 중 생산 원가가 높은 베네수엘라와 나이지리아가 재정 압박으로 어려움에 처한 가운데 승승장구하던 미 셰일업계도 파산보호 신청이 잇따르고 있다.

○신용등급 강등에 외환시장 통제까지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18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B’에서 ‘CCC’로 두 단계 강등한다고 발표했다. 국제유가 급락으로 재정이 악화되고, 거시경제의 불안정이 고조되고 있다는 게 이유다. 대외수입의 92%를 원자재, 특히 대부분 석유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는 최근 외환보유액도 214억달러로 2008년 말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데이터 전문 분석 기관인 CMA 자료를 인용, 베네수엘라가 1년 내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직면할 가능성이 97%라고 전했다.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는 자국 통화 나이라화의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거래를 통제하기로 했다. 올 들어 미 달러화 대비 나이라화의 가치는 15% 하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나이지리아 중앙은행이 외환 딜러들의 시간외 거래를 중단시키고, 장 마감에 임박해 단일 통화에 대한 매수와 매도 주문도 금지했다고 보도했다. 나이지리아는 “이번 조치가 일시적일 것”이라면서도 “위반 시 해당 딜러의 거래 중단을 포함해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조치에도 불구하고 나이라화 가치는 사상 최저 수준인 달러당 187.45나이라까지 떨어졌다. 원유 등 에너지는 나이지리아 수출의 96%를 차지한다.

○미 셰일업계에도 구조조정 움직임

미국 셰일업계에도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메이저 셰일원유업체인 컴스톡리소스는 이날 대표적 셰일원유 생산 지역인 텍사스 동남부의 이글퍼드와 미시시피 지역의 일부 셰일 유정에 대한 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휴스턴에 본사를 둔 엔데버에너지는 9억1320만달러에 달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또 다른 셰일원유업체인 레드포크에너지도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미 셰일업계의 버티기 전략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미 셰일업계의 손익분기점 유가는 배럴당 60~80달러로 퍼져 있으며, 이중 원가경쟁력이 약한 소규모 업체부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날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도 셰일업계의 경영난을 간접적으로 보여줬다. 지난주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예상치를 밑도는 28만9000건으로 전주보다 6000건 감소하며 6주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대표적 셰일원유 생산지역인 텍사스가 9107건, 펜실베이니아주가 1만2303건으로 가장 많이 늘어난 주로 조사됐다.

이날 국제유가는 4.18%의 급락세를 보이며 서부텍사스원유(WTI) 1월 선물은 배럴당 54.11달러로 추락했다. 북해산 브렌트유도 3.12% 하락한 배럴당 59.27달러로 떨어지며 60달러가 또다시 붕괴됐다. 로이터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 “시장이 계속 바닥을 찾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