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 초임 日 앞질렀다"…숫자에 가려진 한국 경제 '빈틈'
‘일본 초봉, 한국에 밀리다. 일본 네티즌 열폭(열등감 폭발).’

최근 인터넷 게시판과 블로그에서 꽤 화제가 됐던 글 제목이다. “대졸자 초임이 일본 20만엔, 한국 30만엔”이라는 소식에 대한 일본 내 반응을 모은 글이었다.

한국의 대졸자 초임이 자국을 추월했다는 소식에 일본 네티즌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자민당 때문에 일본이 만신창이가 됐다”거나 “한국에까지 밀린 건가”라는 자조적인 반응이 많았다. 반면 “한국은 어차피 40세 전에 해고당한다더라” “저출산은 한국이 더 심하다” 같은 냉소적인 댓글도 있었다.

이에 대한 한국 네티즌의 관전평도 다양했다. 일본에 앞서서 기분 좋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첫 월급이 그렇게 높은 데가 도대체 어디냐”는 싸늘한 시선도 있었다.
"대졸 초임 日 앞질렀다"…숫자에 가려진 한국 경제 '빈틈'
이처럼 한국과 일본은 방향은 다르지만 상호 관심사는 넓고도 깊은 편이다. 한국 네티즌들도 프리미어리거 기성용이 한 골 넣거나, 피겨여왕 김연아가 메달을 걸면 일본의 반응부터 궁금해했던 터다. 일본과 오랫동안 자존심 대결을 벌여온 한국에선 인지상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열된 분위기에서 때로는 모호한 숫자들이 동원된다. 대졸자 초임에 대한 이번 게시물도 빈 구석이 많다. 일본의 게시판 사이트인 투채널(2ch)엔 지난달 기사 두 개가 링크됐다. 하나는 일본 후생노동성이 올해 6월 기준으로 대졸자의 첫 월급을 조사했더니 전년 동월 대비 1.2% 오른 20만400엔이었다는 기사다. 또 하나는 한국 경영자총연합회가 ‘올해 임금조정실태조사’를 해보니 대졸자 신입사원 초임이 278만4000원이었다는 내용이다. 작년보다 4.7% 뛴 것이다. 지난달 말 원·엔 환율(외환은행 오후 3시 기준, 100엔당 937원)을 반영하면 29만7000엔, 즉 30만엔 정도가 된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대졸자 첫 월급이 일본의 1.5배가 된다. 그런데 함정이 있다. 일본의 임금 통계는 종사자 10인 이상인 기업(1만4932개)을 대상으로 했다. 경총 통계는 종사자 100인 이상인 기업(369개)을 분석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기업들이다. 월급여액에 상여금도 모두 반영했다.

경총 통계는 해당 직급의 종업원 수가 많을수록 가중치를 둬서 숫자가 더 커진다. 경총 보고서는 “대규모 채용이 이뤄지는 ‘고임금 대기업’이 많이 반영돼 단순 평균보다 수준이 높게 나타날 수 있다”고 유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10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임금 근로자(1873만4000명)의 49.7%가 200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았다. 이 통계를 기반으로 했다면 ‘한국의 초임이 일본보다 높다’는 결론은 달라졌을 것이다.

지난해 6월 100엔당 1200원대였던 원·엔 환율이 급락한 것도 감안해 볼 부분이다. 최근 일본 경제의 숫자가 작게 나오는 이유 중 하나는 엔저다.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5년 내 추격할 수 있다는 전망(LG경제연구원)도 엔화 약세를 전제로 한 것이다.

불완전한 숫자에 기반한 이번 초임 비교는 일본 네티즌들이 시작했다. 일본 경제에 대한 불만과 우려가 표출된 결과다. 일본은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에도 불황을 벗지 못했다. 엔화 가치가 급락하며 한·일 구매력 격차도 좁아졌다.

일본 반응을 관전하는 사람들은 한국 경제가 기성용이나 김연아처럼 인정받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우쭐하기엔 이르다. 일본 네티즌의 지적처럼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빠르다. 부활하는 일본 기업들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을 뛰어넘기에는 아직 우리 내부에 산재한 문제가 너무 많다.

김유미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