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그들은 '스마트' 하기 싫단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자동개폐, 온·습도 자동관리 등 스마트팜을 농가 8000곳에 보급할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농업을 혁신하자는 데 누가 반대할까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농민단체들이 떼로 일어나 좌절시킨 동부팜한농의 화성 유리온실은 최첨단 스마트팜이었다. 대기업의 농업 진출은 죽어도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를 방관했다.

그런 정부가 스마트팜 보급을 위한 자금지원에 나선다고 한다. 정부출연연구소 동원령도 내려질 모양이다. 하지만 남이 하는 스마트팜은 안 된다는 텃세가 존재하는 한 이 정책의 결과는 뻔하다. 차라리 그럴 돈이 있으면 ICT 없이는 하루도 못산다는 고등학생들을 미래 농민으로 키우는 게 스마트팜으로 가는 훨씬 빠른 길일지 모른다. 실제로 덴마크는 기존 농민에 대한 직접 지원보다 그쪽을 택했다.

곳곳에 만연한 내부 저항

핀테크라는 스마트금융을 놓고 금융위원회가 뒤늦게 호들갑을 떠는 것도 마찬가지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금융환경이 ‘ICT와 금융의 융·복합’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이했다”며 “핀테크라는 새로운 트렌드 속에서 성장 기회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들 다 아는 걸 금융위만 이제야 깨달았다는 건지.

“중국 알리바바나 미국 구글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지급결제부터 투자중개까지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금융과 기술 접목은 제한적인 수준”이라는 발언에 이르면 더욱 기가 차다. 무슨 사돈 남 말 하듯 한다. 외국 기업들이 그럴 때 금융위는 도대체 뭘 했나. 국내 핀테크 업체들은 전혀 스마트하지 않은 금융위와 기존 금융회사들이야말로 가장 큰 규제요, 장벽이었다고 말한다.

‘스마트’하기 싫다는 세력은 이들만이 아니다. 전력과 ICT를 융합해 양방향으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환경을 구축한다는 스마트그리드는 또 어떤가. 예비사업자 선정 이후 오리무중이다. 스마트그리드가 이런 식이면 스마트홈도, 스마트시티도 절름발이가 되고 만다. 한국전력은 스마트그리드가 신성장동력이라고 외친다. 하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이는 없다. 스마트그리드를 해도 한전 독점이 유지된다는 확실한 보장이라도 있으면 또 모를까. 여기서도 강한 텃세가 문제다.

경쟁이 융합을 촉발한다

스마트헬스케어도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의료와 ICT 융합을 상징한다는 원격진료는 제자리걸음이다. 의사협회의 저항 탓이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원격진료를 꽃피울 수 있었던 나라가 아직도 시범사업 타령이나 하고 있다. 이럴 바엔 보건복지부는 ‘보건’ 간판을 떼야 하지 않겠나. 구글, 애플, 월마트까지 원격진료에 뛰어드는 판국에 국내 의료 IT 업계는 길을 잃고 말았다.

이러다 보니 이 나라에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법까지 등장했다. 산업융합촉진법(산업통상자원부), ICT특별법(미래창조과학부) 등이 그렇다. 이것도 여의치 않자 최근에는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이 ‘창조경제 시범사업 규제개혁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은 과연 작동할까.

이런 법이 없어도 미국에서 융합이 활발한 이유는 딱 하나다. 자유경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부에서 진입장벽을 치고 경쟁을 거부하는 한 융합이고 혁신이고 불가능하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