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막대한 비용 들어…당장 쉽진 않을 것"
제일모직 사업구조 개편이 전환의 신호탄 될 수도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제일모직이 18일 유가증권시장에 데뷔했다.

제일모직은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의 '마지막 대어'로 투자자들을 유인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맞물려서는 제일모직 상장이 지주회사 체제로의 이행을 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삼성 지주사 전환의 시발점이 제일모직 상장이 될 것으로 관측해왔다.

제일모직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10%,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이 각각 8.37%, 이건희 회장이 3.72%를 보유해 오너 일가 지분이 45.56%에 달한다.

제일모직 상장에 이어 삼성전자 인적분할→삼성전자홀딩스·제일모직 합병→삼성 지주사 출범의 순으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는 게 가장 일반적인 시나리오이다.

◇ "당장은 어렵다"…그룹 입장엔 큰 변화 없어
삼성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에 관한 그룹 차원의 공식 입장은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지주사 전환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데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당장은 쉽지 않을 걸로 본다"고 부연했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은 결국 주주의 문제라 회사 차원에서는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상장 이후의 사업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삼성그룹에서는 최근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 주주 반대로 무산된 점 등에 비춰 주요 계열사의 분할·합병을 거듭해야 하는 지주사 이슈 자체를 매우 민감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룹 안팎에서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작업이 과도기에 놓인 상황이라 오너가 삼남매가 각자 맡은 계열사와 사업부문을 관장하면서 당분간 계열 분리를 하지 않고 현행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삼성전자 자사주 매입 '지렛대 역할'
삼성그룹 측이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음에도 금융투자업계에서 지주사 전환 시나리오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건 제일모직 상장 외에도 여러 방증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 결정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조원대 자사주 매입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대규모 자사주 매입은 7년 만의 일이다.

전체 지분의 1.12%를 취득하는 것으로 자사주 매입이 끝나면 삼성그룹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29.85%(계열사·특수관계인 17.63%+삼성전자 자사주 12.21%)까지 올라간다.

자사주는 일반적으로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지렛대 역할을 한다.

자사주는 통상 의결권에 제한을 받지만, 삼성전자가 투자회사(홀딩스)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을 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분할 과정에서 자사주를 투자회사에 귀속시키면 의결권이 부활하기 때문이다.

흔히 '지주사의 마법'으로 불리는 대목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삼성전자 투자회사와 사업회사의 분할 비율을 2대 8, 제일모직과 삼성전자 투자회사의 합병비율을 1대 3 정도로 각각 추정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현재 삼성전자 지분이 0.6%에 불과하지만, 제일모직과 삼성전자홀딩스가 합병하게 되면 7∼8%대의 지분을 확보할 것으로 점쳐진다.

물론 삼성전자를 분할하고 나면 전자홀딩스가 신주를 발행하고 특수관계인 및 그룹 계열사가 사업부문 주식을 현물로 출자한 뒤 주식 스와프(지분교환)를 하는 복잡한 과정이 뒤따라야만 성립할 수 있는 가정이다.

◇ 제일모직 사업구조 개편 주시해야
업계에서는 제일모직 상장만 놓고 섣불리 지주사 전환의 신호탄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궁극적으로 제일모직의 사업구조 개편이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제일모직은 현재 패션·건설·리조트 등 3개 사업부문을 영위하고 있다.

패션사업부문은 이서현 사장이 총괄하는 영역이다.

앞서 소재부문이 삼성SDI에 흡수 합병되고 옛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변경하는 과정이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제일모직이 삼성전자 분할 이후 전자홀딩스와 합병하려면 사전에 사업부문의 재편 작업이 좀 더 정교하게 선행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앞서 지주회사로 전환한 대기업집단 중에는 지주사가 고유의 사업을 운영하는 곳도 있고, 순수 지주사로 그룹 브랜드 관리만 하는 곳도 있다.

기업 IR(투자자관계) 부문의 한 관계자는 "삼성은 아마도 제일모직의 기업가치가 충분히 올라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며 "제일모직은 주주구성상 특수관계인과 우호 지분이 절대적이라 주식매수청구권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

다만, 기업가치가 고평가될 때 지주사로 합병하는 것이 오너가 입장에선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투자업계에는 제일모직과 삼성전자홀딩스가 바로 합친다는 관측, 제일모직 상장 이후 삼성전자를 분할만 해놓고 한동안 기다린다는 전망 두 가지 시나리오가 공존한다"며 "오너가 이해관계 등을 고려할 때 두 번째 시나리오가 좀 더 유력한 편"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삼성전자 주가가 충분히 낮을 때 합병하는 게 유리한데다 삼성전자엔 주식매수청구권 이슈가 돌출할 여지도 있어 마냥 기다리는 것도 딜레마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옥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