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北 경제 그나마 좋아진 까닭은 …
보도됐듯이 한경 특별취재팀이 북한 중국 접경지대를 다녀왔다. 재발견이었다. 무엇보다 북한의 살림살이가 꽤 나아졌다는 보고다. 단둥의 공장지대를 포함해 해외에서 5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북한 근로자가 외화를 벌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 달에 불과 4만원의 초고강도 노동에조차 근로자가 몰려든다는 얘기는 눈물겹다. 벼락부자를 일컫는 ‘돈주’라는 말도 성행하고 있고 일부 유행과 사치품도 넘치고 있다고 한다.

다른 소식통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북한 관련 매체들에 따르면 굶는 사람도 줄었다. 전력 공급이 끊기다 보니 전체 주택의 약 40%에서 햇빛판이라고 불리는 태양열 패널을 설치했다는 이야기는 믿기도 쉽지 않다. 평면 TV도 급속히 보급된다고 한다. 올해는 날씨까지 좋아 식량 걱정을 한시름 놓았다는 것 역시 반가운 뉴스다. 통일부 자료 역시 북한 경제가 회복 중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국가 배급이 아닌 자력으로 생활을 일궈가는 주민의 비율이 80%다. 이들은 생활의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를 장마당에서 조달한다. 누구나 직장에 출근하지만 출근 도장을 찍고는 바로 직장을 나와 자신만의 사적 경제활동에 매진한다는 스케치들은 옛 소련의 마지막 날들을 떠올리는 풍경화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북한 경제를 개선시키고 있다는 것인가. 날씨만은 아니다. 날씨는 고난의 행군 당시에도 마냥 나쁘지는 않았다. 쌀 작황이 좋아졌지만 작황보다는 쌀 사(私)무역의 증가 때문일 것이다. 쌀은 국가상점과 장마당이 경쟁하고 있고 품질별 가격이 형성되는 심화 과정을 보여준다. 외부의 경제 원조도 아니다. 엄중한 5·24 제재 조치만 해도 벌써 5년째다. 5·24 조치는 2010년 3월26일 일어난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한 제재로부터 시작됐다. 방북 불허, 남북 교역 중단, 대북 신규 투자 금지, 대북 지원 보류,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모든 지원의 차단이 포함됐다. 그런데도 북한 경제는 좋아지고 있고 굶주리는 주민도 사라지고 있다.

사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3년간은 날로 좋아지는 중이다. 한국은행 분석으로는 2010년의 마이너스 성장은 2011년 0.8%의 미약한 경제성장률로, 그리고 2012년에 이어 2013년에는 1.3%로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이 올해는 4~5%의 성장률을 예상한다니 귀를 씻고 들어둘 일이다. 그 과정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한마디로 북한 당국의 마비 상태가 역설적이게도 주민생활을 호전시켰다. 이미 2002년에 경제적 자유를 일부나마 보장하는 7·1 조치가 있었다. 그 결과 주민들이 스스로 살 길을 찾고 있고 그 길을 찾아냈다. 김정은 체제는 국가 배급 능력이 없기 때문에 주민생활에 대한 통제력도 가질 수 없다.

아니 2002년 7·1 조치 이후 남한 당국의 무분별한 퍼주기가 없었더라면 북한 주민들의 생활은 더 일찍 개선됐을 수도 있다. 7·1 조치는 남한의 지원이 급증하면서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기본적으로 경제 원조를 통해 삶이 개선된 나라는 세계에도 없다. 경제 원조를 분석한 데 소토 등 경제학자는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어떻든 지난 20년간 청진의 수남시장은 상인 수만 무려 4000명까지 늘어났다. 하루 이용객 10만명으로 남대문시장 30만명의 3분의 1이다. 물론 매대(賣臺)마다 세금(임대료)도 낸다. 10만 이용객들은 대부분 2차 달리기꾼들이다. 그들은 다른 지방시장으로 달린다.

이 놀라운 시장은 그러나 불시에 문을 닫기도 한다. 국가 배급이 개시되면 매서운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시장은 문을 닫는다. 남한에서 지원 물품이 올라올 때마다 그런 현상은 되풀이된다. 최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5·24 조치의 완화를 포함, 대북 정책 변화를 암시하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함부로 돌멩이를 던지지 마시라. 북한 장마당이 그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어설픈 대북 동정심이 북한 경제도, 주민의 삶도, 통일도 모두 파괴할 수 있다. 그들이 자력으로 일어서는 모습을 지켜볼 때다. 경거망동은 금물이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