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때 初動대응 실패하면 禍 키운다
오너가 3세의 일탈된 행동에서 비롯된 ‘땅콩 리턴’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며 일파만파 확산된 것은 초기 위기대응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건이 터진 뒤 신속하게 대응했다면 이 정도까지 사회적 불신을 자초하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다.

◆초기 대응 실패로 화 키워

‘땅콩 리턴’ 사건이 터진 건 지난 5일이었다. 이후 8일 조간신문을 통해 사건이 공개됐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를 도배했고 비난 여론이 확산됐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해명자료를 낸 것은 그날 오후 10시께였다. 내용도 승무원에게 대부분 잘못을 돌린 해명성 사과에 불과했다. ‘꼼수’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튿날 상황이 더 악화됐다. 주요 외신들까지 이 사건을 크게 보도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귀국길에 공항에서 ‘약식 사과’를 하고 조 전 부사장은 보직사퇴했지만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10일 참여연대가 조 전 부사장을 항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하고, 다음날 검찰이 전격적으로 대한항공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진정한 사과를 할 기회를 잃고 마침내 조 회장이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고개 숙여 사죄했다. 이어 조 전 부사장이 이날 오후 국토교통부에 출석했지만 이미 대한항공의 이미지는 곤두박질친 뒤였다. 업계 관계자는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완고한 오너가(家)와 회사 측의 원칙 없는 대응이 사건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키웠다”고 지적했다. 여론은 조 전 부사장의 행동을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재벌 갑(甲)질의 상징으로 규정하는 분위기다.

초기 대응 실패 사례는 또 있다. 지난 7월께 오비맥주는 ‘카스’에서 소독약 냄새가 난다는 소문이 돌자 “제품에는 문제가 없으며 경쟁사의 조직적인 음해”라고 대응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소비자들의 불만만 샀고, 시장점유율은 곤두박질쳤다.

동서식품도 지난 10월 대장균군이 나온 제품을 재가공한 사실을 지적받고도 “관행적으로 하던 것이고 재가공을 통해 대장균군을 없애서 문제없다”고 변명했다가 조직적인 불매운동이라는 역풍을 맞았다.

◆진정성 있는 신속한 대응이 필수

사건이 터지자마자 신속하게 대응해 위기를 수습한 사례도 있다. 지난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사고 당시 이웅열 코오롱 회장은 사건 발생 후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현장에 찾아와 ‘엎드려 사죄한다’로 시작하는 사죄문을 직접 읽었다.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지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국민적 공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7월 한 일간지에서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 공장에서 일하다 유해물질에 노출돼 백혈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머뭇거리지 않고 매뉴얼대로 대응했다. 사건 당일 대응팀을 꾸리고 최고경영자가 직접 나서 “객관적인 실태조사를 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신속하고 적절한 초기 대응은 매뉴얼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여론의 동향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삼성그룹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언론사 간부와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의견을 묻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들이 옳다고 판단해도 여론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오너가 연관된 사건일수록 상황이 복잡하게 꼬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여론의 동향을 파악해 의사결정권자인 오너에게 신속하게 전달해야 한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주춤하다가는 ‘땅콩 리턴’처럼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남윤선/정인설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