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오랜 기간 예술가들에게 사랑받아 온 소재다. 열거하기 힘들 만큼 수많은 동서양의 미술가들이 자연 풍광을 화폭에 담아 기록했다. 그렇기에 화가가 풍경을 그린다는 것은 새로움에 대한 도전과 같다. 다른 것, 새로운 것, 보다 진화된 것을 좇아야 하는 게 예술가들의 숙명이다.

겨울 화단에 자연 풍경을 담은 전시회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 작가 중 최고가 기록(9억7100만원)을 보유한 홍경택 씨(46)와 사실주의 작가 이광호 씨(47)의 개인전이다. 40대의 두 작가는 자연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을까.

○욕망의 대상이 된 자연을 탐구하다

홍경택 씨가 페리지갤러리의 개인전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서재-골프장’ 앞에 앉아 있다. 이승재 한경매거진 기자 fotoleesj@hankyung.com
홍경택 씨가 페리지갤러리의 개인전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서재-골프장’ 앞에 앉아 있다. 이승재 한경매거진 기자 fotoleesj@hankyung.com
화려한 색채의 펜과 연필 시리즈로 유명한 홍씨는 이번 개인전 ‘그린 그린 그래스(Green Green Grass)’에서 욕망의 대상이 된 자연 풍광을 보여준다. 전시 제목은 영국 가수 톰 존스가 부른 ‘그린 그린 그래스 오브 홈’에서 따왔다. 고향의 푸른 잔디를 그리워하던 죄수가 꿈에서 깨보니 온통 회색 벽인 감옥에 갇혀 있다는 내용을 담은 노래다. 전시장에는 골프장, 하늘, 우주, 에베레스트 산의 풍경을 담은 근작 10점이 걸렸다. 자연을 담았지만 그 모습이 어쩐지 생경하다.

신작 ‘서재-골프장’에는 푸른 잔디가 깔린 골프장의 모습 위로 서재가 둘러싸여 있고 박제된 것 같은 부엉이가 왼쪽을 응시하고 있다. 에베레스트 산의 모습을 담은 신작 ‘서재-에베레스트 산’에도 풍경 위로 서재가 자연을 재단하고 있다. 그는 “자연을 온전히 자연으로 바라볼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지금 우리는 문명의 틀 안에서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렇기에 자연은 분절되고 인공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집적된 장소가 골프장과 정원이라는 설명이다. 내년 1월31일까지, 서울 서초동 페리지갤러리. (070)4676-7034

○덤불에서 발견한 숲의 생명력

이광호 씨가 국제갤러리의 개인전에 출품한 자신의 작품 ‘무제’ 앞에 서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이광호 씨가 국제갤러리의 개인전에 출품한 자신의 작품 ‘무제’ 앞에 서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선인장 시리즈로 잘 알려진 이씨는 이번 전시 ‘그림 풍경’에서 제주도 곶자왈 숲의 겨울 풍경을 소재로 한 신작 21점을 선보인다. 그간 선인장과 인물 시리즈를 통해 객관적 대상을 탐구해 온 작가는 이번에 숲 속에서 자라는 구불구불한 덤불을 통해 촉각적인 풍경을 포착했다.

그는 신작을 완성하기 위해 지난 4년간 1년에 세 차례씩 렌터카를 끌고 제주도의 인적 드문 숲길을 헤맸다. 그곳에서 숲이 갖고 있는 막막함과 무한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이씨는 “겨울 숲에 가보면 사소한 풀 한 포기, 덤불 한 줄기가 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 자라는데 그렇게 생긴 이유가 있더라”며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낮 시간대의 숲,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축축한 덤불 숲, 실빛이 들어오는 자욱한 숲, 어둑어둑한 밤의 숲 전경이 펼쳐진다. 부드럽게 뭉개지거나 날카롭게 윤곽선을 긁어내는 등 숲의 특징에 따라 다채로운 표현 방법을 쓴 점이 눈길을 끈다. 내년 1월25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02)735-8449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