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들의 담합에 대해 부과한 과징금 액수가 매년 늘어나 올해 부과한 금액은 2012년의 3배에 달했다. 그러나 공정위가 부과한 전체 과징금 가운데 약 40%(전체금액 기준)의 금액이 법원에서 취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검찰’인 공정위가 세수 확보 등을 이유로 기업들에 무리하게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에 물린 공정위 과징금 40% "돌려줘라"…법원, 잇단 제동
27일 한국경제신문이 올 들어 10월까지 서울고등법원에서 선고된 공정위 과징금 관련 판결 89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19건이 잘못된 과징금 부과로 판정 나 취소됐다. 과징금 총 3573억원 가운데 39.5%인 1413억원을 기업들이 되돌려 받은 것이다.

공정위를 상대로 한 과징금 취소소송은 고등법원과 대법원을 거치는 2심제다. 공정거래 전문인 한 변호사는 “공정위가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과징금을 부과했다”며 “특히 자진신고한 기업에 과징금을 감면하도록 한 법규정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는 등 제재가 지나쳤다”고 지적했다.

○일감몰아주기 등 과징금 취소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 인정 여부를 둘러싼 법정분쟁은 LG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대만, LG디스플레이 재팬 사이의 주요 제품 판매가격, 생산량 등 담합사건이었다.

공정위는 LG디스플레이 등이 자진신고 이후에도 실무자가 담합회의에 참석한 점을 들어 리니언시가 성립되지 못한다고 봤다. 이에 2011년 12월 시정명령과 함께 LG디스플레이 311억2900만원 등 3개 업체에 313억7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리니언시의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며 과징금 취소판결을 내렸다.

보험사들의 정보공유도 담합 혐의를 받았지만 역시 무죄판정이 났다. 공정위는 2011년 12월 한화생명과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 16개 보험사가 개인보험 상품의 예정이율과 공시이율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고 이율을 담합했다는 이유로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동양생명보험을 비롯해 메트라이프생명, 신한생명, 알리안츠생명 등 4개 보험사가 소송을 제기해 승소 판결을 받았다.

SK그룹 계열사들의 SK C&C 일감몰아주기 행위에 대해 공정위가 부과한 347억원의 과징금도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은 “일괄적 아웃소싱 거래 과정에서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SK텔레콤 등 7개 계열사가 인건비와 보수유지비를 과다하게 지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형 로펌 개입으로 64% 감액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정위에서 받아 집계한 자료를 보면 공정위 심사관이 담합으로 기업에 애초 부과한 과징금 액수는 2012년 7623억원, 2013년 1조3186억원, 올해는 9월까지 2조2628억원으로 매년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그러나 대형 로펌들이 기업을 대리한 덕분에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단계에서 3년간 총액이 4조3439억원에서 1조5640억원으로 64% 줄었다.

공정위 고위직 출신 퇴직자의 상당수가 이들 로펌으로 옮겨감에 따라 ‘공정위 기업 조사→1차 로펌 수임→과징금 산정→위원회 과징금 부과→기업 불복→2차 로펌 수임→과징금 상당액 취소’란 사이클이 만들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올해 8월까지 공정위 4급 이상 퇴직자 56명 가운데 34명(60.7%)이 재취업했고 이 중 로펌 취업자는 11명, 민간기업은 12명 등으로 나타났다. 10대 로펌에서 일하고 있는 공정위 출신은 현재 30여명이다.

대형로펌 공정거래팀에 있는 한 변호사는 “공정위 출신이 대형로펌 사건 수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며 “다만 공정위 단계에서 감경액이 큰 것은 공정거래 사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치열한 법논리 다툼으로 이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석준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