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등 방위산업 부문 계열사와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등 정유화학 부문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전격 매각하기로 했다는 한경 특종보도는 모처럼 속이 시원한 반가운 뉴스다.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고 대기업에서부터 소비자까지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매매금액만 총 2조원에 육박하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이다. 더구나 외환위기 당시 정부 주도의 빅딜과 달리 두 그룹이 자발적으로 한 전략적 판단이 맞아떨어진 빅딜이다. 한국 기업의 능력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반증이다. 이번 M&A가 점차 일상성에 매몰되고 졸음에 잠겨들고 있는 국내 경제계에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한국 제조업은 전례없는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 기업의 거센 추격과 미국 일본 등 선진기업의 노골적 견제 속에 실적도 줄줄이 추락하는 중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 제조업이 어느 순간 ‘퍼펙트 스톰’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온 터다. 더 늦기 전에 선제적 사업재편이 절실했다. 핵심역량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선택과 집중 말고는 다른 돌파구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이번 빅딜은 하나의 분명한 ‘현상 돌파’다. 삼성으로서는 비주력 사업부문의 과감한 정리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전자, 소재 등 핵심사업 중심으로의 재편이 가능해졌다.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에도 추동력이 더해질 게 분명하다. 한화 역시 이번 딜로 방위산업과 화학산업에서 단번에 국내 1위로 올라서게 됐다. 이 여세를 몰아가면 글로벌 시장도 노려볼 수 있는 위치다. 한마디로 화끈한 착점이다. 이런 빅딜이 한국 산업 전반으로 파급되면 국가경제 차원에서도 과잉 중복 산업의 비효율성 등이 일거에 해소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한국의 기업가 정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삼성과 한화의 기업가 정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빅딜은 파는 쪽도, 사는 쪽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기업가 정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사되기 어렵다. 대기업의 역할이 무엇인지 유감없이 보여준 이번 M&A로 삼성, 한화 등 대기업을 바라보던 일각의 부정적 시각도 상당부분 불식될 것이다.

이제 정부와 정치권이 화답할 차례다. 무엇보다 규제개혁에 박차를 가해주기 바란다. 특히 사업재편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인수합병, 노동, 공정거래 등의 규제정비는 시급하다. 김승연 한화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기업가적 기질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부수적 효과도 거두었다. 멈추지 말고 전진해가자. 다른 기업들도 거듭 자세를 추스르자. 우리 경제에 막힌 것이 뚫리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