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건설 담합제재 후폭풍…'솔로몬의 해법' 없나
건설업계가 초주검이다. 자칫 2년간 모든 공공공사 입찰에서 배제될 처지에 놓여서다. 영업정지나 다름없다. 회사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다.

이유는 담합 제재다. 100대 건설사 가운데 상위 51개사가 담합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 결정을 받았다. 5~6년 전 4대강 경인아라뱃길 인천도시철도 등 ‘속성 국책사업’이 쏟아질 때의 공사들이다. 국가계약법에 따라 입찰참가제한 처분은 자동이다. 당장은 취소소송으로 처분효력이 일시 정지돼 있다지만 패소가 확정된다면 업계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각한 국면을 맞을 것이다.

정부라고 속이 시원할까. 그렇지 않다. 제재가 현실화된다고 하자. 항만공사에 입찰할 수 있는 회사는 고작 4개사다. 댐과 철도공사에는 각각 한 개 업체만 참여 자격이 있고, 지하철이나 교량 공사에 입찰 자격이 있는 업체는 아예 없다. 유효경쟁이 성립하지 않거나 경쟁 제한으로 국책사업 추진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입찰 조건을 낮출 수 있겠지만 품질이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무차별적 담합 제재는 해외사업에도 심각한 문제다. 제 나라에서 입찰제한의 멍에를 쓴 기업에 공사를 맡길 리 만무여서다. 이미 초대형 프로젝트 수주전에 경쟁사의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일부 국가는 한국 기업을 입찰에서 배제할 움직임이다.

정부 예산을 낭비했으니 처분조치를 달게 받아야 한다는 시각이 기본이다. 그러나 업계 얘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현행 입찰담합의 제재가 법적 안정성을 크게 해친다는 하소연이다.

공정거래법은 담합행위 성립요건인 합의에 대한 추정규정을 두고 있다. 범죄 성립의 가능성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대래 공정위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공정위가 무죄추정원칙이 아닌 유죄추정·관여추정으로 가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밝힌 소신과는 대조적이다.

정부의 과도하고 중복적인 담합 제재가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한다는 주장도 그렇다. 선진국은 입찰참가 제한과 같은 징벌적 제재가 아니라 금전적 제재 중심으로 담합 제재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과징금에 입찰참가 제한, 형사 처벌, 발주기관의 손해배상청구 등 5중, 6중의 획일적 중복제재가 가해진다.

담합 주체가 무슨 할 말이 많으냐고 힐난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공사 담합은 정부가 조장한 측면이 적지 않다. 예산절감 위주의 발주방식 탓이다. 최저가낙찰제와 실적공사비제도의 적용 확대로 적정공사비 확보는 갈수록 불가능해지고 있다. 기술형 입찰이라는 턴키공사도 가격경쟁 위주로 운영될 뿐이다. 공기를 앞당긴다는 명분으로 공사를 여러 개 공구로 쪼개 동시 발주하고 한 업체에 한 공구만을 맡기는 제도 역시 골탕 먹이긴 매한가지다.

일단 발등의 불부터 끌 필요가 있다. 답은 행정제재 해제다. 과징금은 매길지언정 영업활동에는 물꼬를 터줘야 한다는 얘기다. 공공공사 입찰 제한을 풀어주고 해외공사 수주의 장애물을 거둬줘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가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대대적인 사면조치를 내린 적이 있다. 입찰자격 제한 등 영업활동을 제한하는 처분을 일괄 해제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광복절에도 같은 조치가 있었다.

해외 사례도 많다. 영국은 7년간 벌어진 199건의 건설공사 입찰 담합이 문제가 되자 공정거래청이 과징금만 부과한 채 직접 일괄 사면조치를 취했다. 2009년의 일이다. 네덜란드도 2008년 1400여건의 담합 제재를 단숨에 처리한 적이 있다.

못할 이유가 없다. 건설업계가 과거의 굴레를 벗고 자유로운 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침체된 경기를 살리고 고용을 창출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 다음은 제도 개선이다. 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담합은 계속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키지 못할 기준을 세워놓고 정부와 업계가 언제까지 숨바꼭질을 할 것인가. 제도부터 올바르게 손보는 것이 공정사회의 출발점이다. 그래야 법도 지켜지고, 제도를 어길 때 가차 없는 처벌이 가능하다. 정부가 ‘솔로몬의 해법’을 찾아주길 바란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