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전기료 등 에너지 비용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알루미늄 업계가 생사 기로에 놓였다. 2007년 이후 유럽연합(EU) 내 24개 알루미늄 제련소 중 문을 닫은 곳은 11곳.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의 과도한 환경 규제가 전기료를 끌어올렸고, 그 결과 중공업의 핵심 금속인 알루미늄 업계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고 25일 보도했다.
EU '친환경 그늘'…알루미늄 공장 11곳 폐쇄
유럽 각국은 10여년간 ‘그린 에너지 정책’을 내세우는 등 세계 기후변화 대응에 앞장서 왔지만 핵심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는 등 부작용을 겪고 있다. FT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현실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유럽의회는 2000년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권장하는 등 환경 규제를 단계적으로 강화했다.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가 강화되면서 유럽의 알루미늄 생산비용은 2002년부터 10년간 약 8% 증가했다. 알루미늄은 섭씨 960도의 고열에서 제련해야 하기 때문에 전기료가 총 생산비용의 30%를 차지한다.

이 기간 세계 알루미늄 수요는 급증했다. 알루미늄은 그동안 비싼 가격 탓에 고가의 자동차나 선박의 일부분에만 쓰였지만 전 세계 환경 규제가 촘촘해지면서 오히려 몸값이 올랐다. 주요 교통수단의 ‘연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철강보다 가벼운 알루미늄 사용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유럽의 제련소는 비싼 전기료를 감당하지 못했다. 유럽의 알루미늄 생산량은 2007년 이후 약 40% 감소했다. 알코아, 리오틴토알칸 등 세계적인 철강 업체가 유럽 내 대규모 공장을 폐쇄한 결과다.

유럽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현재 유럽 알루미늄 업계의 알루미늄 생산비용은 t당 2230달러(약 247만원)다. 이는 미국(1940달러)이나 중동지역(1400달러)보다 매우 높다. 현재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알루미늄 가격은 t당 2000달러 선으로 유럽에서 알루미늄을 생산해 수익을 내기 위해선 t당 생산비용을 1600달러까지 낮춰야 한다. 벨기에와 독일에서 제련소를 운영하는 알레리스의 로렌드 반 유럽지역 최고경영자(CEO)는 “탄소배출량 기준 등 최소한의 환경 보호 목표치를 맞출 필요는 있지만 산업 근간을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FT는 유럽 알루미늄 제련소가 속속 폐업 신고를 할 동안 시장의 주도권은 아시아와 중동 지역으로 넘어갔다고 지적했다. 유럽 최대 알루미늄 제련소인 노르스크하이드로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제련소 이전을 검토 중이다. 재규어랜드로버도 사우디로 공장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이미 철강에서 알루미늄으로의 ‘대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 포드자동차는 최근 32년간 베스트셀러 모델이던 F-150픽업트럭 차체를 100%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이 회사 추산에 따르면 차체를 알루미늄으로 바꾸면 차량 무게를 700파운드(약 318kg) 줄일 수 있고, 5~20%의 연료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

알루미늄 업계의 도미노 폐업은 유럽 경제에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유럽 알루미늄 업계 종사자 수는 8만여명에 달하며, 이제 막 금융위기에서 벗어난 그리스는 중공업이 국가의 핵심 산업이다. FT는 “알루미늄 생산량 기준 t당 6유로의 탄소세를 내던 업계가 내년부터 30유로를 부담해야 할 처지”라고 전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