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최동수 "기타는 소리 나는 작은집…홀로 만든다는 게 건축과 다른 점"
숙명처럼 다가온 기타
고교생 때 첫 만남, 그냥 좋아…설계사무소 할 때 일 없으면 제작 올인
아내 “애 다 키우고 하면 어때요?”

현대건설의 일 중독자
20년 회사생활 중 18년 해외근무…싱가포르에 있을 때 아내 암 수술
외로움 탓인가…조기 은퇴 선택

꿈 꾸고 몰입해야 새 길 열려
딸 낳는 마음으로 혼신 다해 만들어…파는 게 아니라 시집 보내는 것
천사 위한 천상의 소리가 마지막 목표


1994년 현대건설 임원으로 재직 중이던 그가 밝힌 사직의 변(辯)은 “기타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삼성이나 롯데에 가려고 그만두느냐”고 묻던 박재면 당시 현대건설 회장은 그의 대답을 듣고선 손가락을 관자놀이 부분에 대고 빙빙 돌리며 “어디 아프냐”고 되물었다. 제정신이냐는 반문이었다. 현대건설은 당시 국내 건설업계 독보적인 1위 업체였고 그는 잘나가던 건축담당 이사였다. 박 회장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했다.

수제 기타 제작명인 최동수 씨(74·사진)의 20년 전 얘기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에 있던 아파트를 정리한 뒤 경기 고양시로 이사했다. 31년간의 건축가 경험을 살려 마당 딸린 집을 직접 지었다. 지난 19일 찾은 그의 단독주택은 최 명인 부부와 강아지 네 마리가 사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행운의 열쇠’ 모양을 따서 지었다는 1층을 둘러본 뒤 지하실로 내려가자 톱밥 먼지가 가득한 작업실이 나왔다. 그는 이곳에서 1년에 단 두 대의 기타를 만든다.

18년간 해외 건설현장 누빈 현대건설맨

인터뷰를 위해 식탁에 마주 앉았다. 최 장인의 아내인 수필가 허숭실 씨가 물을 건넨 뒤 “병원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잘나가던 건설사 임원을 그만두고 기타를 만들겠다는 남편의 말을 아내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내심 궁금해졌다.

“사표 내기 전에 아내에게 ‘기타 만들까’라고 물었더니 ‘하루 세끼는 먹여줄 테니 마음대로 해’라고 하더군요. 원래 현대건설에 입사하기 전에 설계사무소를 운영했어요. 겨울엔 설계 일이 없으니까 집에 들어앉아서 담요 뒤집어쓰고 기타를 만들었죠. 아내가 보기에 답답했던지, 어느 날 ‘취미를 누가 말리느냐. 애들 공부하고 자리 잡고 난 다음에 하면 어떠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돈을 벌자고 마음먹고 1975년 현대건설에 들어갔어요. 나도 약속을 지켰으니 아내도 20년 뒤 약속을 지켜준 거예요.”

그는 현대건설에서 일한 20년 가운데 18년을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 해외에서 보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일할 정도로 일 욕심이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싱가포르에 있을 때 아내가 유방암 수술을 했어요. 그때 의사가 ‘외로움도 암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 말귀를 내가 알아들었죠.” 아내의 병을 함께 극복하기 위한 조기 은퇴였다는 설명이었다. 지금은 아내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1992년께 한 개신교단체가 주는 모범부부상도 받았다.

“악기 제작은 파는 게 아니라 인연을 만드는 게 목적”

최 장인과 기타의 인연은 고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큰아버지에게 선물받은 기타에 매료됐다. 그는 그것을 ‘숙명’이라고 표현했다. 그냥 기타가 좋았다고 했다. 그는 “그때는 돈이 있어도 좋은 악기를 살 수 없었다”며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학창시절엔 고물상에서 망가진 기타를 주워와 분해했다. 집에 있는 오동나무 이불장을 부숴 기타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1971년 ‘제대로 된’ 첫 기타를 만들었다. 그때부터 그의 손에서 태어난 기타가 지금까지 38대다.

기타를 만들기 좋은 계절은 온도와 습도가 적당한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다. 이 시기에 결의 방향과 울림이 좋은 나무를 골라 온도를 맞춘 작업실에 한 달가량 둔다. 그다음 색을 입힌다. 붓 대신 천으로 만든 솜방망이로 두드려 칠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한 번 칠할 때 100~150번을 두드리는데, 이 과정을 10번 반복한다. 여기까지 서너 달이 걸린다.

최 장인이 가장 공들이는 과정은 튜닝이다. 나무마다 가진 고유한 진동을 조화롭게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일일이 손으로 나무 두께를 가늠해 조율한다. 유명 기타리스트 배장흠 씨가 그의 기타를 쓴다. 배씨의 기타는 최 장인이 전면판을 세 번, 뒤판을 두 번 바꿔가며 튜닝을 마쳤다.

“튜닝은 한 달도 걸리고 반 년도 걸리는데 하다 안 되면 뜯어내서 다시 만들어요. 도자기는 안 되면 깨버리잖아요. 기타는 다 뜯어내서 다시 만드는 거예요.”

그는 기타에 여성의 이름을 붙인다. 마리에타 아델라이드 에반젤리움 등 대부분 성서에 나오는 이름이다. 그는 “악기에 성별이 있다면 여자라고 생각한다”며 “딸을 낳는 마음으로 만들기 때문에 기타를 파는 게 아니라 ‘백마 탄 기사에게 시집 보낸다’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의 기타는 정해진 가격이 없다. 최 장인은 “기타를 만들기 전에 가격을 정하는 건 일반인이 하는 일”이라며 “자식을 낳아봐야 어떤 아이인지 알 수 있는데 만들기도 전에 어떻게 가격을 정하느냐”고 되물었다. 대부분 손님이 알아서 가격을 지급한다. 대략 1년에 기타로 2000만원가량을 번다. 최 장인이 예상한 가격보다 높은 값을 치르는 이도 많지만, 그가 공짜로 주는 경우도 있다.

“악기는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거예요. 도공이 도자기 만들다가 부수는 건 자유잖아요. (기타를 그냥 주는 게) 부수는 거보다 낫지. 공짜처럼 보이지만 사실 공짜가 아니에요. 어떤 이는 기타를 줬더니 굉장히 훌륭한 그림을 주기도 하고, 고맙다고 책을 만들어 보내기도 했어요. 악기를 파는 게 아니라 인연을 만드는 거예요. 내 악기는 다 내 자식이에요. 내 자식을 데려갔으면 그 사람도 내 자식이 되는 거지요.”

기타는 소리가 나는 작은 집…건축과 비슷해

[人사이드 人터뷰] 최동수 "기타는 소리 나는 작은집…홀로 만든다는 게 건축과 다른 점"
현대건설 임원과 수제 기타 제작자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그는 “기타는 결국 소리가 나는 작은 집”이라며 “기타를 만들기 위한 미적 감각과 도면에 대한 이해, 구조 계산 등은 건축과 똑같다”고 강조했다. 다만 건축은 건축가가 설계하고 구조전문가가 구조를 개선한 뒤 기능공이 짓는다면, 기타 제작은 이 모든 과정을 혼자 마쳐야 한다는 게 다르다는 것이다.

기타 제작에 들어가면 그는 24시간 몰입한다. 이는 현대건설 재직 때 배운 일버릇이다. 그는 “막막해서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도 돌아가신 왕 회장(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말한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보자’의 정신이 살아난다”며 “그러면 몰입하고 투신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 장인은 지금 ‘기타이야기’(가칭)라는 책을 쓰고 있다. 한 청년단체에서는 그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을 준비하고 있다.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일군 롤모델이라는 게 이유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언해달라는 요청에 “매일매일 꿈을 꾸고 환상 속에 살라”고 했다.

“내가 ‘나중에 퇴직하면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꿈을 꿨으면, 지금부터 공부해야 해요. 꿈을 실현하려면 내가 그 꿈속에 살고 있어야 하거든. 세계 명화도 감상하고 재료도 구하러 다니고…. 뭐든지 그때 가서 할 수 있는 준비를 꾸준히 해야 한다는 얘기예요. 오늘부터 잠들기 전에 공상을 하다가 주무세요. 조직적으로 계획을 세우라는 게 아니라 떠오르는 영감을 실현하려고 움직이면 문득 이루게 돼요.”

꿈과 영감, 공상과 환상 속에 살고 있다는 그가 가장 기타를 만들어주고 싶은 사람은 누굴까. 최 장인은 “천사”라고 답했다.

“천사가 내 기타를 안고 있는 걸 상상해요. 천사가 보통 기타를 안고 있으면 내가 좀 무안하잖아. 천사에게 어울리는 악기, 천상의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예요. 그러니까 끝이 없어. 하나님이 듣고 미소를 짓는 소리를 내고 싶은데, 아직 한번도 하나님이 ‘동수야, 네 기타 괜찮아’라고 전화하거나 메시지를 넣어준 적이 없거든. 그러니까 나는 아직 멀었어요.”

■ 手製기타 제작자 되려면…
국내에 제대로 된 학교 없어
공방에 들어가 일 배우거나 美·日·스페인 등 유학 가야


파울리노 베르나베, 토머스 험프리, 아르투르 산사노, 로버트 럭…. 기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이름에 가슴이 떨릴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제 기타 제작자들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수제 기타를 만드는 사람은 20여명으로 알려졌다. 국내 첫 클래식 기타 제작자인 고(故) 엄상옥 선생의 집안은 엄태흥(아들), 엄홍식(손자) 장인까지 3대째 기타를 만들고 있다. 이 밖에 이운규(브랜드 윌마기타) 이헌국(셀마기타) 이주용(이주용기타) 제작자 등이 수제 기타 공방을 운영하며 활동 중이다.

기타 제작자가 되려면 이런 수제 기타 공방에 들어가 일을 배우거나, 유학을 가는 게 일반적이다. 국내엔 아직 체계적인 기타제작 학교가 없어서다. 기타 제조업체에 입사해 일을 배우는 방법도 있지만 목재를 선별하는 방법 등 기타 제조에 필요한 지식보다는 일반적인 기타 가공 기술을 배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유명 기타제작 학교는 미국의 ‘갤럽 스쿨 오브 뤼트리(Galloup School of Lutherie)’ ‘로베르토 벤 스쿨 오브 루티어(Roberto Venn School of Luthiery)’ ‘뮤지션즈 인스티튜트(Musicians Institute)’와 일본의 ‘페르난데스(Fernandes)’ 등이 있다. 클래식기타 제작의 중심지로 꼽히는 스페인에도 유명 기타 제작 공방과 학원이 있다. 최동수 장인도 퇴직 후 스페인에서 제작 과정을 수료했고, 미국에 있는 기타 학교를 다녔다.

글=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
사진=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