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중산층 몰락, 돈 문제가 아니다
중산층 몰락…. 언론과 정치권은 물론 일반인들도 거의 입에 달고 살다시피하는 주제다. 1990년 74.5%였던 중산층이 2000년 70.87%, 2010년 64.2%로 낮아졌다는 통계는 이를 뒷받침한다. 중위소득의 50~150%를 중산층으로 보는 OECD 기준을 적용한 수치다. 스스로 중산층이라 여기는 주관적 지표상 중산층 감소는 훨씬 더 극적이다. 1989년 갤럽조사에서는 75%가 중산층이라고 응답했지만 최근에는 50%대를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 2013년 한국사회학회 조사에서는 20.2%만이 중산층이라고 대답했을 정도다.

중산층 붕괴를 보여주는 이런 수치들은 부(富) 내지는 사회 양극화 문제로 자연스레 논의가 이어진다. 최근 몇 년 새 경제민주화나 무상복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폭발한 데는 중산층 붕괴라는 배경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탈감으로 자학하는 중산층

그런데 중산층은 정말 무너지고 있는 걸까. 객관적 지표라는 OECD 기준을 보면 최근 몇 년간 중산층 비중은 2009년 63.1%, 2011년 64%, 2012년 65%로 오히려 증가추세다. 물론 OECD 기준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중위소득의 50%인 계층은 차상위 내지는 빈곤 계층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하지만 OECD 기준이 문제라면 과거 장기간에 걸친 중산층 감소 역시 신뢰성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소위 주관적 중산층의 모습은 다소 황당하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 결과 중산층은 4인 가족 기준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합해 6억6000만원은 돼야 한다. 세금과 4대 보험을 제외하고 월평균 515만원을 벌어 341만원을 쓰고 매주 12만원 상당의 외식을 즐기는 한편 소득의 2.5%를 기부하는 수준이다. 2013년 한국사회학회 조사에서는 중산층이라면 자산 10억원, 연봉 7000만원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이는 상위 4~6%의 최상층에 해당한다. 이런 눈높이를 갖고 판단을 하니 주관적 중산층이 20%까지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30년간 중산층 줄지 않았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는 최근 출간한 공저 《당신은 중산층입니까》에서 국민들이 비현실적으로 높은 중산층 기준을 갖고 상대적 박탈감으로 심각한 자학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지난 30여년간 중산층적 생활을 할 수 있는 객관적 여건을 충족시키는 사람들의 비중은 크게 변하지 않았거나 오히려 늘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중산층 문제는 소득이나 자산의 크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달린 문제인지도 모른다. 우리 국민들의 중산층 의식이 가장 높았던 때가 1인당 국민소득 5000달러 정도로 현재 베트남 수준이던 1980년대 말이었다는 점을 봐도 그렇다. 그리고 중산층이 갖고 있는 마음의 병은 무엇보다 정치가 조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부자와 서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대립과 갈등 구도를 끊임없이 만들고 정략적으로 이용해 온 게 대표적이다. ‘중산층 몰락’이라는 이슈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과잉 반응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중산층 70% 달성’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부동산과 세제를 비롯 다양한 중산층 복원책이 발표됐거나 준비 중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중산층의 마음이다. 갈등과 대립, 시기와 질투를 조장하기보다는 중산층의 마음의 병을 치유해줄 따뜻하고 정직한 정치만이 무너진 중산층을 복원할 수 있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