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정당방위
다음 중 정당방위는? (1)폭력을 일삼던 남편을 살해한 아내 (2)정조를 유린한 계부를 남자 친구와 함께 살해한 여성 (3)누나를 성폭행하던 남성에게 중상을 입힌 남동생 (4)성폭행범의 혀를 깨물어 일부를 절단시킨 여성 (5)집에 든 강도의 쇠파이프를 빼앗아 상해를 입힌 남성.

실제 벌어졌던 사건들이다. 여기서 정당방위로 인정된 것은 (4)번뿐이다. (1)은 이혼, 경찰신고 등 사전조치가 없었다는 이유로, (2)(세칭 김보은·김진관 사건)는 사전 살해 공모에다 계부가 무력한 상태란 이유로 각기 살인죄가 적용됐다. (3)과 (5)는 방어행위가 과도했다고 봤다.

정당방위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法益)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형법 21조1항)다. 자기 보호를 위한 ‘부득이한 가해행위’라면 처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상당한 이유’가 모호해 논란이 잦다. 경찰이 2011년 ‘수사단계에서 정당방위 기준’을 발표했지만 논란은 가시지 않는다. 이 기준으론 상대가 범죄자여도 방어만 가능하고, 상대보다 자신의 피해가 더 커야 하며, 상대가 전치 3주 이상은 안 된다. 아니면 쌍방폭행이 돼, 도둑이 집주인을 폭행으로 고소하고 치료비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당방위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영미권에서 생겨난 개념이다. 대륙법에선 엄격하고, 피해자의 자력구제도 금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Talio) 원칙에 따른 무한보복을 막기 위한 취지다. 독일법이 일본을 거쳐 국내 형법에 영향을 줬다. 그러나 미국에선 왕따 피해학생이 가해자를 죽였어도 정당방위로 해석할 정도다. 특히 주거침입에는 어떠한 방어행위도 허용된다. 개인의 집은 ‘성(castle)이자 요새이며 폭력에 대항하는 방위수단’(17세기 판사 에드워드 코크)이란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것이 미국에 건너가 정당방위법(Stand Your Ground Law)과 캐슬독트린(Castle doctrine·주거침입자를 사살해도 기소 불가)이란 관습법이 됐다. 총은 가깝고 법은 멀었던 개척민들에게 타인의 침입은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지금도 아기와 단둘이 있던 엄마가 침입자를 쏴 죽였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집에 든 도둑을 뇌사상태에 빠지게 해 1심에서 1년6개월형을 받은 20대 남성이 유죄냐, 정당방위냐로 논쟁이 뜨겁다. 저항불가 상태인 도둑을 20분이나 더 때린 것은 과했다는 여론과, 도둑이 들어도 가만히 있느냐는 여론이 팽팽하다. 정당방위를 너무 좁히면 방관자 효과를 낳고, 확대해석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2심 판결이 주목된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