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돈가스
일본인들이 외국에서 양식(洋食)에 질렸을 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돈가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짜장면을 그리워하는 것과 일견 비교된다. 돈가스(豚カツ·pork cutlet)는 19세기 말 메이지 시대에 등장한 음식이다. 오스트리아의 빈 슈니첼(schnitzel)이나 체코의 지젝 같은 커틀렛 요리와 닮았지만 일본인들은 굳이 이를 일식(日食) 요리로 친다. 일본의 전통인 덴푸라에서 힌트를 얻었고 소스와 밥 채소샐러드 등을 곁들였다는 점에서 일본 문화가 스며 있다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 무엇보다 일본인들이 고기를 먹지 않아 정부가 이를 장려하기 위한 묘안으로 만들었다는 설에 공감이 간다. 화혼양재(和魂洋才)라는 일본 근대화의 정신이 돈가스에도 녹아들어 있다는 주장이 일리 있어 보인다.

돈가스는 일본 제국주의 시절에 급속히 전파된 서민 음식이었다. 초밥이나 메밀에 길들어 있던 일본인의 입맛엔 너무 진귀하고 신선했다. 기념일 가족 외식에는 꼭 돈가스가 끼어 있었다. 배달도 자유로웠다. 한때 도쿄에는 돈가스 기름 때문에 걸어다니지도 못 한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지금도 일본의 장·노년세대에서는 돈가스를 먹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돈가스가 일본 근대화의 정신이라면 삼겹살은 그야말로 한국 경제 성장의 숨결이 그대로 깃들어 있는 근대화의 동반자요 산물이다. 한국에서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먹은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그만큼 형편이 나아지고 외식도 발전하면서 요리도 진화한 것이다. 삼겹살도 그때부터 유행했다. 무엇보다 1980년대 들어와 삼겹살은 소주와 찰떡궁합을 이뤘다. 드럼통에 양철판을 얹어 소주에 삼겹살을 먹으면서 하루를 보내는 게 당시 일반인들의 낙이었다. 물론 거기서 소통이 이뤄졌고 꼬여 있던 문제도 해결됐다. 삼겹살은 그야말로 한국인의 문화인 것이다.

국내 삼겹살 수요가 줄고 있다는 보도다. 롯데마트의 경우 올 들어 9월까지 삼겹살 매출이 지난해보다 6.1% 감소했다고 한다. 반면 앞다리와 안심 등 저지방 부위는 증가했다. 건강과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때문이라고 한다. 맥주와 치킨의 궁합인 치맥문화의 영향도 있을 게다. 그동안 삼겹살 가격이 하도 올라 금겹살로 통했던 적도 있었다. 이제 그런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정작 한국 근대화에서 삼겹살의 역할에 대한 논문을 쓸 학자는 없는지.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