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인문정신문화 진흥은 토론 교육부터
얼마 전 육군 28사단의 윤모 일병이 선임병들의 구타로 인해 사망한 사건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정부는 책임을 철저히 묻겠다고 하지만 책임 묻기는 사후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 근본 원인을 찾아내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융성위원회 회의에서 전인교육이 그 해결책임을 강조하고, 전인교육을 위한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을 강조했다. 그 산하에 있는 인문정신문화 특별위원회의 제안을 바탕으로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인문정신문화 진흥을 위한 7대 중점과제를 발표했다. 그 첫째가 초·중등 인성교육 실현을 위한 인문정신 함양교육의 강화이고, 둘째가 인문정신 기반 대학 교양교육의 개선이다.

어떻게 인문정신 교육을 강화할 것인가. 토론 교육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인문정신의 핵심은 바람직한 삶과 세상에 대해 생각하며 사는 태도이며, 토론이야말로 바람직한 삶과 세상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반(反)인문정신은 삶과 세상의 ‘바람직함’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태도다. 그것은 독단과 순종, 상명하복의 수직 사회를 낳는다. 상명하복 수직 사회의 대표적인 예가 군대사회다.

상명하복은 단기적 전시 상황에서는 매우 효율적이지만 그것은 예외 상황이다. 상명하복이 지속되면 서서히 불만이 쌓여 마침내 ‘정당성의 위기’가 온다. 그러면 폭력이 동원된다. 그 폭력은 역설적이게도 ‘정당성’의 이름으로 동원된다. 그래서 선임병들은 당당하게 때린다. 당당한 잔임함, 잔인한 당당함이야말로 수직 사회의 ‘전통’이다. 토론은 독단과 순종이 아닌 설득과 합의를 지향하는 수평 사회를 낳는다. 토론을 통해 공평하게 제 역할을 분담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다면 잠재된 당당한 잔인한 폭력이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는 수직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토론 문화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토론을 통해 설득하고 합의하는 체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토론의 기회가 주어져도 잘 활용하지 못한다. 토론 교육이 일찍부터 꾸준히 필요한 이유다. 필자가 만든 서울대학생의 ‘아크로폴리스 토론 프로그램’은 2년째 운영되고 있다. 소통능력, 봉사정신, 팀워크라는 핵심 가치를 갖춘 국가 지도자급 미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승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 결과를 인정하는 덕목을 스스로 체득하도록 돕는 데 있다. 학생들은 토론을 통해 바람직한 삶과 세상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인문정신을 몸소 익히고 설득과 합의로 갈등을 해결하는 소통 능력과 팀워크를 기른다. 이렇게 익힌 토론 능력을 바탕으로 학생들은 인근의 인헌초·중 학생들에게 토론을 가르친다. 토론교육 봉사는 토론교육의 특성 때문에 교육 ‘봉사’인 동시에 실습 ‘학습’이기도 하다.

군대폭력 문제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문제 등 한국 사회는 많은 갈등과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들은 토론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토론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유연하게 사고하게 해 상생과 협력을 도모하는 상호존중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토론은 무엇보다 삶과 세상의 ‘바람직함’에 대해 생각하며 사는 인문정신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생각 없는 사회, 토론 없는 사회는 폭력을 낳는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에서 평범하고 성실한 시민에서 아우슈비츠 학살 전범자가 된 아이히만의 가장 큰 죄는 ‘아무런 생각 없이 산 것’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토론을 통해 길러진 ‘생각하는 힘’과 인문정신은 ‘바람직한’ 한국을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다.

김태완 < 서울대 조선해양공학 교수 taewan@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