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주식시장 붕괴가 고갱을 만들었다
《경제학자의 미술관》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미술 세계를 쉽게 풀어 썼다. ‘명화 속에서 발견한 경제’, ‘화가의 눈에 비친 경제’,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한 미술산업’ 등 3장으로 구성됐다.

저자는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의 삶을 경제불황과 연결해 들여다본다. 고갱은 원래 증권거래소 직원이었다. 1873년 결혼한 후 경제적 여유가 생긴 고갱은 틈틈이 인상파 작가의 작품을 수집하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1882년 프랑스 주식시장의 붕괴였다. 그는 급격한 경기 침체로 직업이 불안정해지자 이듬해부터 전업 화가로 나섰다. 원시 자연을 찾아 1891년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으로 떠났다. 강렬한 색감이 인상적인 ‘타히티의 여인들’ 등 명작은 이렇게 탄생했다.

미술산업에 대한 경제학적 해석도 흥미롭다. 세계 유수 미술관의 수장고에는 수많은 작품이 쌓여 있다. 관람객이 전시실에서 보는 작품은 소장 미술품의 일부에 불과하다. 일반 재화라면 물류 비용을 절약해 가격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미술관은 보관 비용을 감수하면서 전시작보다 훨씬 많은 소장품을 보관한다.

왜 그럴까. 저자는 “소장품의 시장 가치가 미술관의 평가보다 낮게 형성돼 있는 경우가 많고, 공공 미술관은 소장품의 판매를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거래를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술관들은 미술품을 공공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미술품을 일반인에게 판매하면 작품이 사장(死藏)된다고 여긴다”고 덧붙였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