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탈리아 장인기업은 우리 中企의 미래
혹시 이런 도시들을 가보거나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알프스 산맥의 빙하가 녹아 고이면서 생긴 호수를 끼고 있어 국제적인 휴양지로 유명한 이탈리아 코모는 견직물 생산지로도 명성이 높다. 중세에 형성된 옛 시가지와 목가적인 풍경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북동부의 베르가모는 수력발전을 이용해 금속, 알루미늄, 자동차 차체, 직물 등의 공업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이번 한·이탈리아 정상회담을 앞두고 경제협력포럼이 열린 밀라노 인근의 이곳들은 관광지로서의 명성 못지않게 지역에 특화된 전통적 제조업이 강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지역개념을 벗어나 이탈리아에서는 작은 규모에 세계적인 브랜드를 보유한 장인기업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바로비에르&토소는 가족기업으로 출발해 전통적 유리공예 기법으로 세계적인 조명 브랜드가 됐다. 콜나고는 장인정신으로 첨단 소재를 활용한 명품 자전거를 생산한다. 베네통은 연간 20억유로가 넘는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으로 성장했지만 가족 구성원들의 특화된 전문영역으로 성공한 장인기업 사례로 꼽힌다.

이탈리아 경제를 이끌어가는 힘은 이런 가업승계형 장인기업들로부터 나온다. 이탈리아에서 가업승계 기업은 전체의 72%에 달한다. 약 500만개 기업 중에 360만개가 해당된다. 이들은 국내총생산(GDP)의 80%를 차지하고, 고용의 75%를 담당하면서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룬다. 이탈리아가 오랫동안 주요 7개국(G7) 지위를 지켜왔고,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세계 8위 경제대국을 유지해 온 비결은 이처럼 기본기가 탄탄한 중소기업들이 굳건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는 장인기업이다. 장인기업들은 대부분 가업으로 대물림이 이뤄져 그만큼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가치관과 비전을 공유하기 때문에 제품의 전문화와 창의성을 추구하기 수월해 세계적인 명품이 탄생한다. 또한 중세 유럽의 길드 같은 동업자조직을 운영하고 있어 기업별로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해 상호 보완적인 협업체제가 가능하다. 정부 또한 가업승계 기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실제로 기업을 직계가족에게 승계할 때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키면 상속세를 면제해 준다.

이탈리아는 한국과 창조경제의 파트너십을 강화할 수 있는 최적의 상대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명성을 구축하고 있는 디자인, 패션, 섬유 등의 분야에 한국이 가진 강점을 창조적으로 융합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발굴하는 노력이 시급하고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의 뛰어난 제조기술을 접목하거나, 인수합병(M&A) 등 투자협력을 확대해 한국 기업의 자본 및 글로벌 유통망의 진출이 활발히 이뤄지도록 힘써야 한다.

이번 한·이탈리아 정상회담은 양국이 창조경제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KOTRA는 이번에 이탈리아 장인기업협회와 양해각서(MOU)를 체결, 청년 인턴의 연수 프로그램 등을 통해 브랜드 개발 및 디자인 능력 향상에 협력하기로 했다. 신약 및 패션 분야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무역투자공사(ICE)와도 MOU를 체결해 양국 중소기업의 협력 기반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한국과 이탈리아는 반도국가라는 지형적인 공통점뿐만 아니라 흥이 많은 민족적 기질, 발효음식을 좋아하는 식습관, 가부장적인 전통, 경제 규모 등 닮은 점이 많다. 그만큼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이탈리아 속담에 ‘좋은 친구를 얻은 사람은 보물을 찾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탈리아 장인기업들은 한국 중소기업이 닮아 나가야 할 미래다. 창조경제에 적합한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모델로 이탈리아만한 본보기는 없다.

오영호 < KOTRA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