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묵묵한 관심
노벨상의 계절이 또 한 번 지나갔다. 일본에선 세 명의 물리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스코어 ‘19-0’이다. ‘기초과학이 부실한 탓이다’ ‘이공계 인재들에게 제대로 된 처우를 해주지 않아서 그렇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지원 정책을 펼쳐야 한다’ 등 많은 원인이 제기됐다. 모두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처음 듣는 말은 하나도 없었다. 매년 이맘때마다 반복해온 낯익은 풍경이다.

그래도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올해는 우리 학교 화학과 유룡 교수가 톰슨로이터가 발표한 노벨상 수상 예측 인물에 올랐다는 점이다. 발표 당일이 되자 학교로 수많은 취재진이 찾아왔다. ‘수상’도 아니고 ‘예상’ 후보에 들었다는 것만으로 국가적인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서구 편향적인 노벨상을 열망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되묻거나, 본말이 전도된 것처럼 상 자체에 집착하는 사회 분위기에 일침을 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한민국은 노벨상을 기다리고 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상은 불발됐다. 한국 과학이 노벨상에 근접한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 분위기였다. 당사자인 유 교수는 담담하게 연구에 매진할 것이다. 이제까지 늘 그래왔듯이 말이다. 하지만 노벨상의 계절이 되면 유 교수의 이름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빨리 좋은 결과를 내놓으라고 도리어 채근당할지도 모른다. 과학 분야의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10년 넘게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고은 시인은 “사람들이 나를 대할 때 시인 아무개는 어디로 가버리고 ‘그것(노벨상)’과 관련해서만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때면 나는 갑절로 외롭다”며 심정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최근 개봉한 한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고 한다. “하나를 보여주면 둘을 원하고 둘을 보여주면 셋을, 사람들은 항상 그 이상을 원한다. 모두 나만 바라보고 있어서 멈춰야 할 때를 놓쳤다.” 과도한 관심과 성급한 기대감은 역효과를 내기 마련이다. 노벨상은 목표가 될 수 없다. 훌륭한 연구에 덧붙는 영예일 뿐이다. 그래도 원한다면 역량 있는 과학자에게 근심 없는 연구 환경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우선이다. 연구실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에 휘둘리지 않도록 묵묵한 관심으로 응원해주는 것이 첩경이다.

강성모 < KAIST 총장 president@kaist.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