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우유정책 실패했다
우유는 ‘완전식품’으로 불리기도 하고 ‘하얀 보약’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비타민 등 114가지의 영양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뼈와 치아를 튼튼하게 해주고 성장을 도와주는 칼슘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어린이들이 반드시 섭취하도록 권장되고 있다. 우유 한 컵에는 250~300㎎의 칼슘이 함유돼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피부를 탄력 있게 만들고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 우유 목욕을 즐겼다.

우유 제조업체들은 낙농가에서 원유(原乳)를 사서 흰 우유나 발효유를 만든다. 남는 원유는 물기를 빼고 건조시켜 분유(粉乳)로 만들어 보관한다. 분유는 나중에 영양분이 첨가돼 아기들을 위한 조제분유로 만들어지거나, 과자 아이스크림 등의 재료로 사용된다. 때문에 적절한 수준의 분유 재고는 유지돼야 한다.

우유 재고 12년 만에 최대

최근 분유 재고량은 1만5000t에 육박하고 있다. 우유로 환산하면 18만6000t을 넘는 규모다. 2002년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다. 국내 적정 분유 재고량이 5000t 정도이니 남아도는 분유가 적정 수준의 3배에 이른다.

우유가 이처럼 남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소비가 줄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대형마트의 우유 및 유제품 판매 동향을 보면 우유가 1.8% 줄었다. 요구르트는 2.8%, 우유가 들어간 냉장음료 매출은 4.9% 감소했다. 전체적으로 4% 남짓 유제품 판매가 줄었다. 반면 원유 공급은 늘고 있다. 낙농가에서 올해 생산한 원유는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5% 넘게 늘었다. 날씨가 따뜻해 젖소들이 우유를 더 많이 만들어냈다는 것이 낙농가들의 설명이다.

우유 제조업체들은 온난화 현상으로 분유 재고가 더 쌓일 것을 우려하고 있다. 창고가 포화 상태인 만큼 내다 버릴 판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기업들은 사놓은 원재료가 과도하게 많으면 통상 원재료 매입을 줄이지만 우유 제조업체들은 그럴 수가 없다. 정부 주도로 전국적으로 우유 쿼터제(생산량 할당제)가 실시되고 있어 우유 제조업체들은 쿼터만큼 낙농가로부터 원유를 사들여야 한다.

과도한 정부 개입이 문제 키워

우유 소비를 늘려서 재고를 해결하는 방법도 여의치 않다. 당장 인구가 늘지 않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우유 소비가 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두유나 음료 등 대체재가 많다 보니 우유를 더 많이 마시라고 캠페인을 벌여도 별 효과가 없다.

소비를 늘리는 데는 판매가격을 뚝 떨어뜨리는 것이 시장경제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 역시 우유 제조업체들이 택하기 힘든 해법이다. 정부가 개입해 만든 원유가격연동제(원유값을 낙농가의 생산비에 연동시키는 제도) 때문이다. 생산비는 시간이 흐를수록 늘 수밖에 없어 우유 제조업체들의 원가 부담은 매년 커진다. 지난해엔 원유값이 13% 가까이 뛰었다. 원가가 낮아지지 않으니 판매가를 낮추면 손실이 난다. 판매가를 못 낮추니 소비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우유업체들의 창고엔 재고만 늘어나는 게 요즘의 실상이다.

정부의 우유 정책은 실패했다. 정부가 짜놓은 틀이 민간 경제주체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 결과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개입을 줄여 시장의 자율조정 기능을 회복시키는 게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이다.

박준동 생활경제부 차장 jdpower@hankyung.com